[성명서]20대 전교조 임원 선거에 대한 노동자연대 교사모임의 입장

11월 30일부터 치르는 전교조 20대 위원장-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이번 선거는 여성위원회의 페미니즘 선본인 기호 1번 황미선-손지은 후보조, ‘교찾사’의 기호 2번 김해경-김병일 후보조, 현 지도부 그룹인 ‘소통과 실천’의 기호 3번 전희영-장지철 후보조 이렇게 3파전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과 경제 침체 심화, 각종 부패 의혹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번 전교조 임원 선거는 이런 상황 속에서 치러진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국회와 법원에 떠넘기며 시간만 끌다가, 지난 9월 대법원의 법외노조 통보 위법 판결을 받고서 7년 만에 전교조를 노조로 인정했다. 또,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교육·돌봄 공백의 책임을 학교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학교 노동자 간 갈등을 부추겼다. 방역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교사수를 늘리기는커녕 저출생을 이유로 2018년에 발표한 중장기 교원수급계획안보다 교사 정원을 더 감축하는 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고교학점제, 교원양성체제 개편 등으로 교사 노동 유연화를 꾀하겠다고 예고했다. 교육 적폐를 청산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교육 적폐를 더 생산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도 현 권정오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독립적으로 운동을 건설하기보다는 정부·교육감과의 협상을 강조해 왔다. 위원장 후보 시절부터 전교조 합법화가 임박했다며수차례 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지만 정부의 배신만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권정오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의 법외노조 직권 취소가 어렵겠다며 체념하고, 국회의 법 개정이나 대법원 판결로 눈을 돌리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권정오 지도부가 청와대 앞 농성장을 접으려 했던 맥락에는 이런 지점이 깔려 있다.) 심지어 권정오 지도부는 정부와 여당이 ILO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악을 세트로 추진하는데도, ‘교섭창구 단일화’ 같은 독소조항만 뺀다면 정부안을 수용해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와, 정부의 전교조와 노동계 분리 대응에도 쉽게 흔들렸다.

물론 법외노조가 이렇게 지지부진했던 데에는 교찾사 지도부의 문제도 한몫 하고 있다. 이전 조창익 지도부는 기층 조합원들의 투쟁을 실질적으로 건설하기보다는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겠다며 사실상 정부와의 교섭에 집중했다. 또 김정훈 지도부나 변성호 지도부 때도 법외노조 문제를 민주당에 의존해 교원노조법 개정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조합원들을 수동화시켜 왔다. 결국 정부의 취소 공문 한 장이면 해결될 법외노조 문제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3년 넘는 시간이 지나 대법원에서 해결을 본 것이다.

성과 없는 정부와의 협력에 기대기

권정오 지도부는 전반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는 방향을 취해 왔다. 특히 정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협조해 줬다.

예컨대, 2019년에 조국 자녀의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졌을 때, 권정오 지도부는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조국 자녀 학생부 공개를 비판하며 사실상 조국의 편을 들었다. 정부가 항일투사 흉내를 내며 한일 갈등을 이유로 기업의 규제완화 등을 추진하면서도, 뒤로는 한미일 동맹 속에서 일본 정부와 타협해 왔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일본산 불매운동 동참을 결의문으로 채택할 만큼, 정부에 대한 협조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교원수급 감축 규모가 더 늘어나고, 국가교육회의 주도로 교원자격체제 유연화, 수습교사제, 교사대 통폐합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도 권정오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국가교육회의를 교육개혁을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교찾사 측도 국가교육회의에 기대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호봉예규까지 개정하면서 교사 임금을 삭감·강탈하는 공격에 권정오 지도부는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소송 대응으로만 일괄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학교 휴업 기간이 길어지며 교육 당국은 학교비정규직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려 했다. 정부 지원도 없이 온라인 수업, 긴급돌봄과 같은 새로운 노동을 학교노동자들에게 부과하고, 코로나19 위기와 방역에 대한 책임을 학교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여 학교 노동자들 사이에서 정규직-비정규직간 갈등을 높였다. 그런데도 권정오 지도부는 다른 교원단체들과 함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교육부-교원단체 공동선언’에 참여해 정부에 협력했다.

권정오 지도부는 교육권을 강조하면서도, 조합원인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미온적이었다. 배이상헌 교사를 방어하자는 서명 운동 등 기층 조합원의 압력으로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배이상헌 교사 방어 방침이 결정됐다. 하지만 권정오 지도부는 광주교육청의 징계위 강행에 맞서는 집회 등을 조직하지 않았다. 권정오 위원장은 징계위가 가까이 오고, 선거 등 조합원들의 압력을 의식해 뒤늦게야 장휘국 교육감을 항의 방문하고, 중징계 철회 요구 성명서를 냈지만, 이는 면피성이 크다. 이는 진보교육감에 대해 독립적이지 못하면, 교사의 교육권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매년 벌어지는 학교 비정규직 투쟁은 전교조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전교조 지도부는 올해 돌봄전담사들의 파업에 사실상 반대했고, 돌봄교실의 민간위탁 위험성이 높은 정부의 지자체 이관 정책에 분칠을 해 주었다. 또한 교사와 돌봄전담사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식의 분열주의적 주장을 하고 있어, 노동계급 단결 문제에서 매우 해악적이다.

이런 상황을 볼 때, 권정오 지도부를 잇는 ‘소통과 실천’의 전희영-장지철 후보조를 지지할 수 없다.

이 후보조는 전교조 합법화 시기를 맞이해 문재인 정부와의 단체협약, 국회에서 교육개혁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한 방안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정부는 말로는 ‘노동 존중’ 얘기하면서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코로나19로 커진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2021년 교육 부문 예산만 2조 501억 원 삭감한 정부가 자동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하로 줄이고, 교사의 교육권을 온전히 보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 지도부가 교섭만으로 될 것처럼 정부에 대한 기대를 잔뜩 올려 놓고 거듭 배신 당하면서 조합원들의 사기만 떨어져 전교조 운동은 더 침체할 것이다. 권정오 지도부 때 더 많은 조합원이 이탈하고, 조합비를 낮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지점과 관련이 있다.

좌파적 입장을 분명히 하지 못한 교찾사 후보조

상대적 좌파라는 ‘교찾사’ 역시 현 지도부와 별 차별점을 보여 주지 못했다.

교찾사 정책팀은 민주당의 4월 총선 승리 이후에 개혁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 교육 개혁을 할 것이라 기대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따라 교육 환경 개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주당 개혁 인사들과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처럼 교육운동 경력으로 제도권에 진출한 사람들이 교육 개혁을 어느 정도 추진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무망하다.

사실 4월 총선 압승은 해외 선진국들이 코로나 방역이 처참하게 실패하고, 우파 야당이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하면서 얻은 반사이익 덕분이었다. 그러나 개혁 배신과 부패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금은 문재인 취임 후 지지율이 최저 국면이다. 전교조는 이런 정부의 위기를 이용해, 정부를 비판하고 맞서 싸우며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 투쟁을 고무해야 한다. 그러나 김해경-김병일 후보조가 내세운 것은 7년 만에 회복한 합법노조로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정책 역량을 키워 2022년 대선과 지자체 선거 교육 공약을 주도하겠다는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돌봄전담사들의 파업 같은 노동자들의 단결 문제에서도 교찾사는 좌파적 입장을 취하지 못했다. 특히 교찾사의 김해경-김병일 선본은 ‘돌봄교실 지자체 직영 이관’을 내세우며, 돌봄 파업을 지지하지 않았다. 추상적인 ‘직영 이관’을 얘기하면서 뜨거운 현실 쟁점인 돌봄전담사들의 파업 지지 여부는 회피한 것이다.

물론 교찾사는 일부 쟁점에서 현 지도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배이상헌 교사 방어 쟁점이 그렇다. 교찾사는 배이상헌 방어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고, 지난 7월 대의원대회에서는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서자는 수정안에 교찾사 활동가들이 지지하기도 했다.(물론 위원장 후보로 나선 김해경 교찾사 대표나 사무총장 후보로 나선 김병일 광주지부장은 여성위와 절충적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성평등 수업도 방어하지 않는 여성위 후보

기호 1번 페미니즘 선본 황미선-손지은 후보도 배이상헌 교사 방어 운동에 있어서 매우 문제가 크다. 이들은 성별과 나이 등에 대한 차별, 불평등 해소를 위한 학교문화 개선 및 성평등 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배이상헌 교사의 성평등 수업에 대한 교육청의 공격에 대해서는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독단적인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개념이 끼치는 해악이 두드러진다.

‘소통과 실천’이나 여성위원회 측 선본들이 배이상헌 교사 방어 운동에 해악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노동자연대 교사모임은 미온적이나마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선 ‘교찾사’ 후보를 지지하고자 한다. 다른 문제들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배이상헌 교사 방어 운동에 대해서 그나마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0. 11. 28.

노동자연대 교사모임

  •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일부 문구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