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으로 얼룩진 학교,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이 문제인가?

정원석(현직 교사, 전교조 조합원)

이 기사는 8월 16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초등교사 사망을 계기로 살펴본다: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이 문제인가?(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지난달 서울 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내기 교사였던 그는 과중한 업무에 짓눌렸고, 일부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를 힘겨워 했고,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시달렸다. 학교에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모든 어려움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이 사건은 오늘날 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교사가 겪는 고통을 비극적으로 보여 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권 침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전국에서 모인 교사 수만 명이 몇 주째 집회를 이어 가며 ‘교권 보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들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이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이 됐을까? 정부의 대책은 교사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을까?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안전한 교육 환경은 어떻게 가능한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교권 vs 학생 인권?

정부는 교권 추락의 핵심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했다. 그러나 조례 하나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깔보게 됐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발생한 교권 침해 건수 평균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이 교원 100명 당 0.5건, 없는 지역이 0.54건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보다 없는 지역에서 교권 침해가 더 발생한 것이다.

 

인권을 보장받는 수준이 높은 학생일수록 더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교육권을 존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다.

사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데 많은 한계를 보여 왔다. 조례가 제정된 곳은 전국 17개 시도 중 6곳에 그치고, 제정 과정에서 알맹이나 민감한 쟁점들은 빠졌다. 그나마 시행 중인 조례도 학교 현장에서 전혀 강제력이 없다. 여기에는 진보교육감들의 소심함이 한몫했다.

교권 침해는 왜 발생하는가?

그럼, 교권 침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소위 ‘금쪽이’나 ‘진상 학부모’가 문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권 침해는 교육의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교육 주체 간의 갈등 때문에 생겨난다.

한국 사회에서 교권의 위기가 가시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교실 붕괴’ 논란이 벌어진 때부터다. 당시는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이 학교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때다.

공교육도 상품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관계는 ‘교육 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라는 인식이 강화됐다. 소비자주권론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학부모는 ‘갑’, 교사는 ‘을’로 취급되기도 했다.

사교육이 급증하면서 교사의 지위는 더욱 하락했다. 공교육은 사교육보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시대에 뒤쳐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교원평가제를 관철하려고 “무사안일”, “철밥통”, “부적격 교사” 운운하며 교사 집단을 매도하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비난은 그 뒤 모든 정부에서 거듭 반복됐다.

사회 전반의 변화도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권위주의가 퇴조하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개인의 권리 의식이 성장했다. 이런 변화는 그동안 억눌려 온 권리를 되찾으려는 정당한 반발이었지만, 이런 문제를 사회 구조와 연결하지 못하고 개인 간의 ‘권리 대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대했다.

이런 인식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사회 전반에 개인 간 권리 다툼이 확산하고 갈등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런 경향이 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말 IMF 경제 위기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불평등이 증대되고, 입시와 취업 경쟁이 격화되며, 불안한 가정이 늘어난 것도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무한 경쟁 교육과 우월 가르기 식 수월성 교육이 확대되면서 공교육의 위기는 점점 더 심화했다. 경쟁, 차별, 학교 폭력, 사교육비 증가, 교육 불평등 악화 등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과 불신이 매우 커졌는데, 그들의 불만은 시쳇말로 만만한 교사에게 집중됐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극심한 소외를 경험한다. 모든 교육 과정과 수업은 정해진 채로 학생들에게 강제되고, 학생은 통제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과도한 학습량, 성적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가혹한 경쟁 시스템은 학생들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나날이 좌절감을 심어주며 자존감과 인격을 파괴한다.

이로 인한 소외로 학생들은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 게임 중독, 자해나 자살 충동, 타인에 대한 폭력적 충동 등을 겪을 수 있다. 최근에 위기 가정이 늘어나고 아동의 양육 환경이 나빠진 것과 맞물려 정서 행동 위기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다.

학생들은 학교 부적응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소극적으로 수업 참여를 거부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교사의 ‘지시’나 학교 ‘규칙’을 거부하기도 한다. 또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학생도 있고, 다른 학생을 괴롭히며 거짓 자존감을 얻으려는 학생도 있다. 자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교권 침해는 이런 부적응 행동이 교사와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하나의 “돌출점”일 뿐이다.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증대하면서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도 심해졌다. 학부모는 특히 학교 폭력, 학생 징계, 내신 성적, 생활기록부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이 입시 경쟁을 포함한 자녀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모는 어떻게든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고 민원과 고소·고발 등 교사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들을 이용한다.

갈등을 조장하는 과중한 업무

‘교권의 위기’란 결국 ‘교육적 관계의 위기’인 것이다. 날로 격화되는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으로 많은 교사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소위 ‘교권 침해’만이 문제는 아니다.

서이초 교사가 남긴 일기에서도 드러났듯이, 교사들의 과중한 업무 또한 큰 문제다. 교사들은 ‘업무 폭탄’을 처리하느라 온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늘어난 업무 양도 문제지만 업무 처리 곤란도가 증가했다. 수업 방해, 학교 부적응, 학교 폭력 등이 증가하면서, 교사들은 예전보다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몇 배나 더 힘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과중한 업무는 학교 내 갈등을 가중시킨다. 담임 기피 등 교사들 사이에서 업무 ‘폭탄 돌리기’ 현상이 나타났고, 행정 업무 분담 문제로 교직원과의 갈등도 갈수록 커졌다.

 

교사의 과중한 업무는 학교 구성원들의 갈등과 연결된 문제다. 따라서 교사의 고통을 완화하려면 교사 수를 늘리고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의 고통도, 학부모의 불만도, 나아가서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와의 갈등도 줄일 수 있다.

윤석열식 해법의 문제점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그동안 교사들의 고통을 방치해 온 정부가 갑자기 ‘교권 수호자’ 행세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교사들의 안전이 아니라 교육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교사도 학생도 아닌 수업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며 강도 높은 ‘교육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사교육을 잡겠다는 핑계로, 경쟁 교육을 강화하려 한다. 이를 위해 학생과 교사를 더욱 통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볼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교권 보호’를 명분으로 몇몇 법을 개정하고는 교사들더러 학생을 더 통제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의 통제 강화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발을 키우고,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추진 중인 교권 침해 생활기록부 기재는 학교 폭력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행정심판과 소송이 급증한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민원과 소송의 전쟁터로 만들 게 뻔하다.

교육부는 말로는 교사를 지키겠다더니, 올해 신규 교사 선발 인원을 대규모로 축소하는 안을 발표했다. 교원 감축은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더욱 사지로 내몰 것이다.

 

전국 시·도교육감들도 교권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청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교육청은 학교 내 갈등을 수수방관해 왔고, 모든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떠넘겼다.

진보 교육감들은 꾀죄죄한 개혁에 그쳤다. 10년이 넘는 진보 교육감 시대 동안 학교는 바뀐 것이 별로 없고, 교사의 조건은 더 나빠졌다.

법률 개정과 생활지도권 보장의 한계

상당수 교사들은 지금 당장 학부모 악성 민원과 수업방해 학생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 학교 민원 창구 일원화,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조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 마련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 대책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⑴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은 교사들의 1순위 요구다.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사는 그 진위 여부 확인도 없이 바로 직위해제 같은 실질적 징계를 받게 된다. 많은 교사들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신고 위협으로 고통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4년간 아동학대 행위자로 등록된 교직원 수가 무려 6787명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검찰이 최종 기소한 인원은 110명으로 전체의 1.6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만큼 무분별한 신고가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남용 소지가 있는 문제 조항들은 시급히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면책권’을 보장하는 것은 무고한 신고를 줄이는 데 조금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민원이나 법적 다툼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⑵ 민원 창구 일원화는 교사에게 민원이 직접 쏟아지는 것을 잠깐 막아 줄 수 있다. 하지만 학교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학교장이 민원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 떠넘길 확률이 높다. 또한 민원을 받고 처리할 인력이 추가로 배치되지 않으면, 교사와 직원들 사이에서 업무 부담을 둘러싼 갈등만 심화될 것이다.

⑶ 어느 학생의 방해가 교사나 다른 학생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조치’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분리 조치된 학생을 돌볼 인력을 추가 배치하지 않으면 기존 교사들이 부담을 추가로 떠안게 될 테고, 심지어는 분리 조치 과정에서 추가적인 교권 침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해당 학생에 대한 낙인 효과를 방지하고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적 해결이 더 어려워질 뿐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이 생길 것이다.

⑷ ‘생활지도권 보장’도 한계가 크다.

교사에게 강력한 생활지도권을 부여한 영국 사례를 살펴보자. 영국의 교사는 교육 활동에 지장을 주는 학생을 교실 밖으로 추방하거나 정학 처분을 내릴 수 있고, 수업에 방해되는 소지품을 압수할 수 있으며, 필요시 합당한 물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영국의 교사들은 안전하지 못하다. 2021년 영국 교원노조(NASUWT)의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10퍼센트는 학생에게 신체적 폭력 위협을, 38퍼센트는 언어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6퍼센트는 실제로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

캐나다, 독일, 미국, 핀란드 등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보장하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도 교사들은 심각한 교권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 그 교사들은 인력 부족, 과도한 업무량, 다양한 요구와 과중한 책임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는 우울증, 소진(번아웃), 교직 이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생활지도권이 결코 교사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고, 교사의 노동조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교사들은 교육권 보장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안전한 교육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수업권’이나 ‘생활지도권’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교사의 노동조건 개선과 입시 경쟁 완화 등 교육 환경 개선이 꼭 필요하다.

대중투쟁과 근본적 변화

폭염 속에서도 매주 수만 명의 교사가 집회를 이어 가고 있다. 교사 운동 역사에서 전례 없는 규모다. 이 운동은 에너지가 상당해서 더 큰 투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에 법 개정을 촉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약점도 있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 단체들이 법 개정 논의와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어 이런 경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으로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다. 교사들의 고통을 완화하고 비극을 멈추려면 교사의 조건과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긴축을 추진하며 교육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앞에서는 ‘교권 보호’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교사의 조건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또, 경쟁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교사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이때, 교사의 조건과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을 뒤로 미룬다면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집회에 나오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서이초 교사의 49재가 돌아오는 9월 초에 연가 파업을 벌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교사들의 바람대로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교사의 조건과 교육 환경 개선이 교사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자본주의 학교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교사들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발제를 마무리하겠다.

우리가 학교에서 경험하는 경쟁, 차별, 억압, 소외 등은 교육이 자본주의의 필요에 종속된 결과다. 자본주의에서 학교 교육은 미래의 노동자들을 위계화된 노동시장에 배치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경쟁적이고 차별적이다. 학교에 교육 불평등, 학교 부적응, 학교 폭력 등이 만연한 이유다. 이렇게 가혹한 환경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의 변화를 바란다면, 교육을 바꾸는 투쟁이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급진적 전망과 연결될 때만이 교육의 실질적 변화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