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 지원을 늘려라

김미연(초등 특수교사)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 소원이다.”

발달장애인들과 가족 556명이 4월 19일에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했다. 지켜보는 이들은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현재 경복궁역사 안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새 정부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삼고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4월 19일 윤석열 인수위원회가 장애인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질적 내용이 없는 빈 껍데기였다.(관련 기사)

4월 20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장애인차별철폐의날 집회 ‘24시간 지원체계’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이미진

 

발달장애인 정책도 그렇다. 인수위는 장애인 일자리와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두루뭉술한 말만 있을 뿐 장애인들의 구체적 요구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않았다. 예산 등 실행을 위한 구체적 계획도 없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살아가려면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발달장애인의 처지

우리 나라 발달장애인은 지난해 기준 25만 5207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9.6퍼센트를 차지한다.

생산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장애인들은 ‘평균적으로’ 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회에서 배제돼 왔다. 개별 가족에 오롯이 떠넘겨진 돌봄 책임은 사회와 분리된 시설 수용으로 발달장애인들을 내몰았다.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80퍼센트가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적절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서 가난한 가정 안에서는 온갖 비극이 일어나곤 한다.

올해 3월에도 수원에서 8살 난 발달장애 아동이, 시흥시에서 20대 지적장애 성인이 부모에 의해 생을 달리했다. 두 가정 모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는 발달장애인 가정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발달장애인이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 주간활동서비스, 평생교육센터, 직업재활시설 등이 휴관하면서 당사자들은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일상의 붕괴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이 악화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가족의 부담도 더 커졌다. 〈코로나19 기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 조사〉(국가인권위) 결과를 보면, 발달장애인 가족의 20.5퍼센트가 돌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답했다.

또, 발달장애인들은 학령기가 끝나면 대부분 갈 곳을 잃는다.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가 있지만 누적 기간 5년이 지나면 이조차 떠나야 하는 현실이다.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겨우 구하더라도 최저임금조차 적용이 안 돼(최저임금법 7조) 월급이 2021년 기준 평균 37만 원밖에 안 된다.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10년 넘게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며 삭발, 단식, 농성 등 투쟁해 왔다. 덕분에 2014년에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는 등 관련 정책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뒤통수 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이런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8년에도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국가 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209명 보호자의 삭발, 2500여 명의 삼보일배, 청와대 앞 농성을 했다. 그 해 9월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윤석열 인수위 앞 경복궁 역에서 농성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미진

 

그러나 정작 2019년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이를 뒷받침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 예산은 191억 원에 불과해 성인 발달장애인 17만 명 중 고작 1.5퍼센트인 2500명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면 기존에 받던 활동지원서비스를 대폭(최소 40시간에서 최대 72시간까지) 삭감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었다. 2022년까지 주간활동서비스 지원 대상을 1만 7000명, 청소년방과후활동지원 서비스 지원 대상을 2만 2000명으로 확대하기로 했으나, 예산이 삭감돼 두 서비스 대상자는 각각 당초 계획의 절반가량 수준인 1만 명밖에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여느 개혁처럼 말만 번지르르하고 뒤통수를 친 것이다.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은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시급하고 절실한 요구다.

나의 제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국가가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성인이 돼도 일할 수 있도록 장애 특성에 맞는 직업 교육을 늘리고 원하는 업무를 배우고 익히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들도 필요한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장애 때문에 가난한 가정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현실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투쟁에 지지를 보낸다.


  • 노동자연대 414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