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치 방침과 진보대통합당 안에 대해

총선 이후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이 커다란 관심사다. 8월 민주노총 정책대대에서 다뤄질 주요 안건 중 하나도 민주노총의 정치 전략이다. 최근 자민통계가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 안을 주창하면서 새 노동자 정당 건설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진보·좌파가 단결하면 좋겠지만, 이미 두 차례나 분열한 경험 때문에 진보·좌파 통합정당이 가능한지,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지 하는 물음이 생긴다. 또, 지난 총선에서 진보·좌파 진영의 성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일각에서 스페인의 포데모스를 진보정치의 모델로 제시하는데 한국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지, 선거와 대중투쟁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 많은 논점이 있다. 이런 논의에 대해 간략히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20대 총선에서 진보·좌파는 후퇴했는가?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참패했다. 많은 사람들이 통쾌하고 후련해 했다. 반면, 진보·좌파 정당의 성적에 대해서는 우울한 평가가 많은 듯하다. 일각에서는 진보·좌파 진영의 성적이 “저조”하다고 평가하면서 지난 2004년이나 2012년 총선 결과와 비교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비교는 정치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이 13.1퍼센트의 득표와 10석을 얻었는데, 당시에는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왼쪽으로 이동했었다.

이번 총선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대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치러졌다. 그 바람에 진보·좌파 정당들이 사표 논리에 크게 짓눌렸다. 그럼에도 진보·좌파 진영은 정의당이 6석을, 울산연합 계열(무소속)이 2석을 얻었다.

2012년에 진보정치는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었다. 경선 부정사건과 중앙위 폭력 사태로 통합진보당은 재차 분열했고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를 철회했다. ‘진보정치’는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노동자 투쟁의 회복과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덕분에 소생하기 시작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진보·좌파의 화살표가 다시 성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전 시기의 정치적 굴곡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번 총선 결과를 진보정치의 후퇴로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일면적이다. 이런 평가는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비관적인 전망과 전술로 연결될 수 있다. 또, 총선 이후 자신감을 얻고 전진할 수 있는 노동계급 투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의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닌가?

일부 좌파들은 정의당이 못마땅한 나머지 진보정당이 못 된다거나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자본가 정당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의당 리더들의 정치적 배경, 공약, 당원의 사회적 구성과 기반을 보면, 정의당은 결코 자본가 정당이 아니다.

심상정, 노회찬, 이정미 등 정의당의 핵심 리더들은 노동운동 출신이다. 정의당의 총선 공약은 더민주당보다 왼쪽에 있었다. 정의당 당원 3만 명 중 2만 명이 노동자고, 그 중 1만여 명은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당의 주요 계급 기반이 노동계급에 있다는 뜻이다. 정의당의 강령은 서구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비슷하다. 레닌은 이런 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불렀다.

물론 정의당의 노골적인 개혁주의는 자주 문제를 낳았다. 가령 2014년 공무원연금 개악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야합을 공공연히 찬성하다가 국회 표결 때는 기권했다. 정의당은 ‘진짜 안보’에 능력이 있음을 입증 받고 싶어 총선에서 ‘태극기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더민주당이 관심을 주지 않아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하고, 인천에서는 제주 강정마을 진압을 현장 지휘한 경찰 간부 윤종기와 단일화 하기도 했다. 정의당의 이러한 온건한 행보와 우경화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순전한 자본주의 정당보다 어느 경우에든 더 낫다. 그 차이를 보지 못한다면, 개혁을 염원하는 대중의 정서에 공감하지도, 설득하지도 못할 것이다.

선거연합정당과 공동전선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좌파의 단결을 바란다.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들이 단결해 부르주아 야당이 표를 가져가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의 정치 진출을 이루고자 하는 바람은 정당하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는 울산과 창원 성산에서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모든 정파가 단결해 계급투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려면 진보·좌파의 단결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민통계가 주창하는 ‘진보대통합당 안’은 단결보다는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로 강령, 원칙, 전략이 다른데, 한 정당으로 억지로 통일하려는 시도는 2008년과 2012년에 쓰라린 분열로 끝난 바 있다. 자민통계는 문제의 원인을 주로 패권주의에서 찾으려 하지만 그 근원은 원칙과 전략의 차이에 있었다. 즉, 북한 문제, 계급투쟁 문제,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연립 정부 문제 등이 불거지면 진보대통합당은 또다시 쓰라린 분열로 귀결 될 수 있다. 그리 되면 조직노동자 운동이 약화될 것이다.

자민통계가 ‘진보대통합당’과 ‘상설연대체’를 추구하는 것은 인민전선 전략과 관련이 있다. 인민전선은 중간계급 심지어는 일부 자본가 계급과 힘을 합치고, 선거에서 ‘진보대통합당’을 통해 부르주아 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체결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때로 선거적 실익을 챙길 수는 있지만, 기본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계급 간 동맹이라는 결정적 약점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의 힘을 약화시킨다.

민주노총 안에는 엄연하게 원칙과 전략 등에서 정치적 차이가 존재한다. 현재 진보·좌파 정당이 여러 개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단결을 추구하려면 진보·좌파 정당과 단체들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선거를 위해 단결을 도모하는 선거연합정당이 더 적절하다. 여기에는 정의당과 자민통계를 포함한 주요 세력들이 모두 참여하고, 대선을 앞두고 부르주아 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하거나 연립정부 합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선거를 위한 진보·좌파의 단결뿐 아니라 구체적 이슈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공동전선도 중요하다. 즉, 현 시기 노동자들의 조건이 걸린 당면 투쟁의 요구들을 둘러싼 공동 대응과 투쟁이 필요하다. 이때의 연대체는 대중운동이 활성화돼 계급의식이 고양되는 시기가 아니라면 포괄적 쟁점들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 보다는 사안별로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사안별 연대체(공동전선)가 단결에 이롭다. 실제 투쟁 경험들을 봐도 어지간한 대중 행동은 — 2008년 촛불, 용산 참사, 세월호 등 — 사안별 연대체가 주도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 스페인의 포데모스 모델을 한국 정치에 적용하자고 말한다. 이들은 포데모스가 보여준 중요한 특징들 중에 ‘온라인 플랫폼’에 주목한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며 진보정치에 적극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기반 정당(정치)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표적 인터넷 기반 정당인 독일 해적당은 2006년 창당해 2009년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 진출했다. 2012년 한때 13퍼센트까지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45퍼센트의 지지율에 그쳤다. 한국에서도 권영국 변호사가 주도한 시민혁명당이 온라인 플랫폼 ‘움직여’를 통해 ‘직접민주주의’ 정치 실험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온라인 플랫폼’이 소통과 참여의 수단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이 포데모스와 같은 진보정치의 핵심적 성공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데모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지난 몇 년간 스페인의 정치∙경제 위기와 긴축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었다. 스페인에서는 2010년 긴축에 맞선 총파업이 노조 관료의 배신적 후퇴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이후 저항은 거리에서 터져 나왔고, 수백만 명이 도시 광장을 점거하며 경제 위기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만으로는 대량 실업, 빈곤, 복지 파탄을 막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해법으로 포데모스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사실 포데모스에서 온라인 플랫폼보다 더 주목할 만한 특징은 ‘서클’이다. ‘서클’은 수백 명이 모여 토론하고 조직하는 대규모 회합으로 도시 곳곳에, 마을 곳곳에 생겨나 한때 9백여 개에 달했다. 진정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서클’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힘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스페인과 정치적 조건이나 운동의 상황이 모두 다르다. 포데모스는 기존의 공식정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성장했지만, 동시에 기성 노동조합의 배신에 반감을 느끼면서 조직노동자 계급이나 노동자 운동과 거리를 뒀다. 포데모스의 주요 기반은 자율주의와 아나키즘 정서가 컸던 광장점거 운동 주도 세력과 청년들이었다.

반면, 현 시기 한국의 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은 단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자 운동이다. 지난해 민주노총은 두 차례 총파업을 벌였고, 10만 여 명이 참가한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의 압도적 대열도 민주노총 노동자들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총선에서도 총선공투본 등을 통해 진보·좌파 정치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계급투표를 조직한 바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정의당 부상의 근원적 힘은 조직노동자 운동의 회복과 투쟁 덕분이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조직노동자 운동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따라서 각 나라의 구체적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더군다나 한국에서 조직노동자 운동에 굳건히 기반하지 않은 채, ‘온라인 플랫폼’ 등 스페인의 포데모스 모델을 고스란히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공상적일 수 있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대중투쟁은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권력은 선출되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사장들, 경찰, 검찰, 사법부, 군 장성, 은행가들 같은 계급이 우리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린다.

이것이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것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노동계급의 자신감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했다면 노동자들은 낙담하고 사기저하 됐을 것이다. 반대로 정부여당의 참패는 노동자들에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진보∙좌파 후보들이 대거 당선한다면 더 고무 받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진보·좌파 정당의 성공을 바라야 한다.

그러나 선거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는 노동계급의 조직, 단결 투쟁, 자신감이다. 이번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형성됐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 정당은 노동자들에게 쉽게 양보하지도, 선의의 개혁을 선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진정한 개혁을 추동 할 힘은 결코 국회 안에 있지 않다. 독립적인 노동자 대중투쟁이 개혁을 밀어붙이는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