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원하는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저항하자!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 포기에 부쳐

 

2020년 2월 7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약자한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쏟아내고 혐오를 부추긴 일각의 목소리 앞에 멈춰야 했다.

‘폭풍 같은 일주일’을 보내며 두렵고 괴로웠을 학생에게 먼저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일부 네티즌은 온라인 공간에서 인신공격과 모욕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일부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는 성명을 발표해 입학을 포기하도록 몰아갔다. 신상유출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당사자는 입학 포기를 알리며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 마저 빼앗긴” 쓰린 현실을 비판했다.

한편, 해당 학생을 압박한 일각의 반대보다 학교 안팎의 지지가 훨씬 컸다. 온라인에서는 “#합격축하해요_우리가여기있다”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고, 숙명여대 동문 764인을 비롯해 진보정당과 여러 단체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을 응원하며 환영 성명을 냈다. 공개적인 지지와 연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결코 이 사회의 다수가 아님을 보여 줬다.

성별 이분법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막연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트랜스 여성의 여대 입학 소식에 일부 학생들이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꼈을 수 있다. 성별에 따라 분리되는 학교, 학급, 그리고 교복에 이르기까지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기제가 일상 곳곳에 스며든 학교를 생각해 보라.

진보적 교사들은 성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보수적 ‘학교성교육 표준안(2015년)’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교육부는 “성 정체성과 성소수자의 이해” 과목이 담긴 기존 성교육 자료를 쓰지 못하게 지침을 내리고 교사연수에서도 제외했다. 2019년 9월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본심의에서는 학교성교육 표준안에 ‘성소수자를 포함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 답변했다. 다양성과 포괄성의 가치를 수용하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를 권고하는 국제협약에 위배된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퍼진 책임에서 교육부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정의당 대변인의 일침대로, “여전히 대한민국 학교는 성소수자 학생을 환대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드러났다 … 교육당국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만연한 사회적 배경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트랜스젠더 학생을 내치는 개인과 일부 단체의 입장이 용인될 수는 없다. 성 정체성은 개인의 핵심 자아 중 하나로 그 자체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한다. “세포 속의 23쌍 중 1쌍에 불과한 염색체가 진지한 정체성의 호소보다 우선되어야 할까.”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25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출생신고, 화장실 출입, 구직 활동, 결혼 등 삶의 여러 과정에서 이들은 없는 존재인 듯 따가운 시선과 제도적 차별 속에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성별 정정은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심지어 판사가 성기사진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트렌스젠더들에겐 고비용의 성별 전환 수술은 언감생심이며, 안전하고 위생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의료진과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성전환 수술을 해도 차별은 여전하다.

트랜스 여성은 사회화 과정이 달라 ‘진짜 여성’이 아니라는 일각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일반으로 말해 남성과 여성의 사회화 과정은 다르지만, 여성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존재한다. 특히, 부유층 여성과 노동계급 여성의 사회화 과정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성용 화장실과 기숙사 등 ‘여성 공간’을 위험하게 한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편견과 공포를 부추긴다. 세계적 통계를 봐도 트랜스 여성이 생물학적 성과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 여성을 공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트랜스 여성이 물리적 폭력⋅정서적 괴롭힘⋅성폭력의 대상이 된 경우가 더 많다. 트랜스 여성을 ‘남성’으로 규정하고 위험한 존재로 보는 일부 분리적 페미니스트들은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고 차별한다는 조야한 생물학적 환원론을 드러낼 뿐이다.

트랜스 여성과 시스 여성의 권리는 본질적으로 대립되지 않고 오히려 연결돼 있다. 여성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차별을 조장해 대중을 분열하려는 자본주의 지배자들이지 대부분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로 고통 받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니다. 지배자들은 고정된 성 역할, 이분법적 성별 규범 속에 사람들을 욱여넣으려 하고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가 고통받는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성 해방 운동의 일부였다. 1969년 스톤월 항쟁과 1960~1970년 급진적 정치 운동에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차별과 억압에 맞선 운동의 일부로 열의 있게 참가했고 리더로 활약한 투사들도 있었다. 생물학적 특성을 이유로 서로 적대하고 분열하기보다 힘을 합쳐 저항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다.

2017년 4월 영국 전국교원노조(NUT) 대의원대회에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는 역사적인 결의안이 80%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됐다. 앞서 2014년 트랜스젠더 교사 루시 메도스가 자신을 조롱하는 보수 언론 칼럼 때문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을 때, 전국교원노조는 연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의 교사들도 이런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트랜스젠더 학생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사례를 보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과 만나는 교사로서 갖는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는 학생의 바람에 부응하며, 전교조를 포함한 교사노동자들이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선 운동의 일부가 된다면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더 긍정적으로 바꾸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노동자 연대 교사모임은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성소수자가 차별에 시달리지 않는 사회를 위해 함께 연대할 것이다. “하나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이 되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원하는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저항하자!

2020년 2월 9일

노동자연대 교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