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유럽 전역에서 커지고 있는 반긴축, 반신자유주의, 유럽연합에 대한 거부의 표현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다수가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다. 영국 국가, 지배계급, 경제, 정계가 혼돈에 휩싸였다.

당장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은 자신들이 공들인 국제질서에 중요한 교란이 생겼다고 우려한다. 유럽연합을 컨트롤할 핵심 동맹 영국이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들은 유럽연합 탈퇴 요구가 다른 회원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들은 그렇다 치고, <한겨레>의 메시지가 지독히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겨레>는 브렉시트가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저학력자들이 저지른 짓으로 “개방, 다양성, 협력, 통합 등의 단어 대신 고립, 폐쇄, 자국우선 등의 단어가 득세”한 결과’라고 본다. 투표 때마다 지겹게 들고 나오는 세대론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연합 탈퇴 투표는 권력 엘리트층에 의해 삶이 파탄나고 있다고 느낀 노동계급의 항의 투표였다. 유럽 전역에서 커지고 있는 반긴축, 반신자유주의, 유럽연합에 대한 거부의 표현인 것이다. 숙련 노동자, 반숙련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탈퇴에 투표했다. 반면 중간 관리직, 고위 관리직, 전문직, 경영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43퍼센트만이 탈퇴에 투표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채권자로서 직접 긴축을 강요해 왔을 뿐 아니라, 회원국들의 재정 지출을 제한하는 규정으로 영국 같은 나라에도 긴축을 강요했다. 긴축이 낳은 실업과 복지 삭감, 해고로 고통 받은 노동자들이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진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유럽연합은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그리스·헝가리·이탈리아에서 난민들을 수용소에 가뒀고 터키에 막대한 돈을 쥐어 주며 난민 단속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몰래 국경을 넘다 지중해에서 익사하거나 환기가 안 되는 냉동차에서 질식사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이 ‘이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오랜 착각은 그 실체가 드러났고, 오히려 ‘유럽연합 탈퇴’가 국제주의적 요구가 됐다.

그런데 적잖은 좌파들은 투표 결과에 대해 낙담하는 분위기다. 그들은 이번 투표 결과를 이민자에 대한 민족주의와 인종차별 정서가 분출한 것으로 본다. 이런 입장은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이 이번 선거의 승리자인양 행세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물론 이번 국민투표 기간에 부각된 인종차별 문제를 가벼이 보자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 주장은 탈퇴파 진영에서 선명하게 제기됐다. 탈퇴파 진영을 주도한 것은 이민자 반대 주장을 하는 영국독립당과 일부 보수당 정치인들이었다.

그러나 영국독립당의 최근 영국 총선 득표 3백80만 명보다 훨씬 많은 1천7백만 명이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영국 노동자와 서민을 싸잡아 우매하게 여기는 엘리트주의가 아닌 이상, 매우 많은 사람들이 우파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유럽연합 탈퇴를 바랐다고 봐야 옳다.

또 국민투표 직전에 영국에서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탈퇴에 투표하겠다고 답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은 이민자가 지역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거나 적어도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봤다.

탈퇴에 투표한 사람을 모두 인종차별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도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몰려가 기존 정치 질서에 크게 한 방을 먹였다”고 우려하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투표 결과를 더 정확히 보는 것이다.

유럽연합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적 우익들이 거기에 편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공산당(CPB) 등의 급진좌파들이 처음부터 탈퇴 투표 독려에 나섰던 것이다. 급진좌파들은 보수당의 탈퇴파나 영국독립당과 함께 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의 주장으로 그들을 반박하면서, 유럽연합에 대한 좌파적 비판과 극우 세력에 대한 비판을 결합시키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이 향후 벌어질 정치 투쟁의 중요한 발판을 만든 것이다.

유럽연합 잔류에 투표한 사람들 중엔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취지에서 투표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단결을 통해 더 강력해질 수 있다. 국민투표에서 표현된 계급적 반감을 우파들이 선점하지 않도록 좌파적 주장을 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연합의 본질 : 제국주의 국가와 지배자들을 위한 기구

유럽연합은 세계 경쟁에서 유럽 자본의 이익을 지지하기 위한 기구다.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체적 정책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릴 수 있지만, 노동자를 공격하는 데서는 한통속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채무 부담을 일부 완화해 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그리스가 계속해서 고강도 긴축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는 데서는 유럽 지배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연합을 인종차별에 맞서는 방벽으로 본다. 그러나 “요새화된 유럽”이라고 비판 받는 유럽연합의 이민 통제 정책은 유럽 이민자 배척과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정책은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

일부 좌파들은 유럽연합을 개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진정한 권력은 유럽중앙은행 같은 대중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기구들에 있다. 유럽연합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처럼 폐지해 버려야 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기구다.

노동자 국제주의

세계 자본들이 국가 단위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진정한 국제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일시적인) 협정은 강도 높은 노동자 착취와 긴축, 군사 경쟁을 위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어느 계급의 국제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동자 계급에게 국제주의는 국제적인 투쟁과 연대의 확산을 의미한다.

그리스 사회주의 노동자당(SEK)은 “유럽연합이 영국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것은 우리가 긴축과 난민 거부에 맞서 싸울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반겼다.

박근혜는 영국 국민투표 직후 “브렉시트를 비롯한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와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안보위기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해야 되는 엄중한 상황”이라며 긴축 정책의 고삐를 죄고 있다.

교육 재정 삭감, 성과급 강화 등 교육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전교조 조합원들도 영국 노동자들의 선택에 기뻐하면서 한국 지배자들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긴축에 맞선 투쟁을 적극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