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삭감에 이어 대대적인 교육재정 삭감을 예고했다. 지난 5월 13일 ‘2015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을 제시했다. 골자는 누리과정(무상보육)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고,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유도하고, 교원 정원을 축소하는 것이다.
이 회의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가 재정 운용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부는 “경제 활력 제고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방재정, 지방교육재정, 복지재정, 공공기관 등 전방위적인 재정 개혁을 추진할 것을 밝혔다. 복지 삭감이나 공공서비스 축소 등으로 재정을 절감해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
정부가 내놓은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의 핵심을 살펴보자. 우선, 무상보육 등 주요 교육 서비스를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할 계획이다. 진보교육감의 예산 편성 거부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무상보육 예산 전액을 떠넘기는 바람에 지방교육청들은 긴축 예산은 물론 대규모 지방채 발행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예산들이 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되면 지방교육재정은 그야말로 파탄 날 것이다. 무상보육만 하더라도 각 교육청은 예산의 10퍼센트가량을 편성해야 한다. 이는 경직성 경비와 의무지출경비를 제외한 교육청 가용예산과 맞먹는 규모이다. 무상급식,혁신학교, 학교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위해 사용할 교육청 예산이 거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재정난은 물론 교육 자치도 심각하게 위협한다. 교육부는 내년도 예산에서 무상보육, 초등돌봄교실 등 주요 사업에 대해서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지방교육청에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교육부는 단계별 고교무상교육 예산으로 2천4백억 원을 신청했다. 고교무상교육 전면 실시에 필요한 예산 2조 5천억 원의 10%도 안 된다. 3년 동안 이행하지 않던 공약인 고교무상교육 예산을 찔끔 신청한 것은 아마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 같다.
둘째,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배분 기준에서 학생 수 비중을 확대하고 소규모 학교 통폐합 유도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교부금 배분 기준에서 학교와 학급 수 반영 비율은 최대한 낮추고 학생 수 기준을 5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기준은 학교 수 55.5%, 학급 수 13.8%, 학생 수 30.7%다.
학생 수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예산을 주는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그 결과는 농어촌 지역의 교육 황폐화다. 정부 방식은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전체 교육 예산을 줄이고 학생 수 비중에 따라 교부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농어촌 지역에서 예산을 빼내 수도권 지역에 더 주는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이리되면 학생 수가 적고 소규모 학교가 많은 농어촌 지역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강원도의 경우, 학생 수 비중을 50%까지 높이면 현재 1조 8천억 원 규모의 교부금이 1조 2천억 원으로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 수 비중 확대는 결국 학급 수와 학교 수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재정 인센티브를 내세워 특히 학생 수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들의 통폐합을 유도하겠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2천44개 학교가 그 대상이다.
셋째, 학생 수 감소세를 이유로 교원 증원을 축소하고, 정원 외 기간제 교사 운영을 최소화 할 방침이다.
교원 정원 문제는 이미 심각하다. 정부는 학령 인구 감소 추세를 명분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학급 당 교원법정정원 기준을 없애고 ‘학생 당’으로 바꿨다. 이나마도 예산 문제와 공무원 총정원제 등으로 정규 교사 확보는 계속 후퇴해 왔다. 교원법정정원 확보율은 김대중 정부 84퍼센트, 노무현 정부 82퍼센트,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7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중등학교의 경우 20퍼센트가량이 비정규 교사다.
따라서 훨씬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하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 초·중·고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각각 18.4명, 18.1명, 15.4명으로 OECD평균 15.3명, 13.5명, 13.8명보다 많다. 학급 당 학생 수 역시 초교 25.2명, 중학교 33.4명으로 OECD 평균 21.3명, 23.5명과 격차가 크다.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상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지키려면 교원 정원 감축이 아니라 대폭 확충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난 6월 초 교육부는 신규 교사 임용을 대폭 축소하는 계획을 내놔 큰 비난을 받았다. 가배정 계획에 따르면 올해에 비해 초등교사는 1천5백 명, 중등 교사는 8백 명 정도 준다. 최근에는 명예퇴직 신청을 적극 수용해 명퇴자를 늘이는 반면 신규 임용을 일부 늘리겠다고 밝혔다. 퇴직은 왕창, 신규 임용은 찔끔 하는 것은 사실상 구조조정이다.
한편, 정부는 정규직 교사들의 저항을 의식해 기간제 교사를 대량 해고하는 식으로 교원 정원을 축소하려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치기’ 하려는 속셈이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교육청은 재정난을 이유로 기간제 교사 1천2백89명과 학교비정규직 3백49명을 해고했다. 이는 지방교육재정 효율화로 인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예고편이다. 그런데 당시 전교조 경기지부 지도부는 이에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진보교육감을 비판하고 반대 행동을 조직하는 일을 꺼렸던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정부의 ‘갈라치기’ 공격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국가의 책임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 작년보다 1조 5천억원이 감소한데다가 무상보육 등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는 바람에, 지방교육청들은 긴축 예산을 편성했다. 이 때문에 학교기본운영비와 교직원 복지비·수당 등 삭감, 교육사업(복지) 축소 또는 폐지, 기간제 교사와 학교비정규직의 해고 등이 벌어지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교육 여건이 더 악화됐다.
지방교육청의 채무 규모도 급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방교육청 재정 감사를 벌여 교육청이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교육재정을 따로 편성치 않고 일반(지방)재정에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지방교육재정이 고갈된 근본 원인은 국가가 교육에 돈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교육비 지출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수준은 OECD 평균을 기준으로 초등학생이 84.1%로 22위, 중등학생이 88.4%로 25위다. 교육단계별 공교육비 부담 재원을 비교하면, 초등교육이 80.7%, 33위로 거의 꼴찌다.
반면 국방비 지출은 세계 10위, 무기 수입은 세계 9위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교육예산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이고 있다. 정부 예산 대비 교육 예산이 2005년 20.8%에서 2014년 16.4%로 낮아졌는데 이는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비율이다.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연평균 증가율도 노무현 정부가 9.3%, 이명박 정부가 6.2%인데 반해,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0.3%로 급감했다. 그런데 2015년 전체 정부 예산은 작년 대비 5.7퍼센트 증가했다.
박근혜는 대선 공약으로 ‘무상보육, 초등돌봄,학급 당 학생 수 OECD 상위 수준으로 감축, 고교 무상교육 실시’ 등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교육에 대한 국가 부담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기업주와 부자들이 책임져야 한다.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기업이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
진보교육감의 동요와 후퇴
교육재정 삭감은 진보교육감의 교육 개혁 추진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육복지도 교육 자치도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 애초 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 정부의 책임”이라며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 그러나 진보교육감들은 ‘어린이집 보육대란’을 우려해 타협했고, 최근에는 ‘최후의 1인’으로 버티던 김승환
전북교육감마저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키로 했다. 새정치연합 대표 문재인이 내년부터 중앙 정부가 무상보육 예산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뒤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작년 정부·여당의 무상보육 예산 떠넘기기에 동의해 준 세력이다.
지방교육청의 무상보육 예산 편성은 보육의 국가 책임을 흐리는 불필요한 후퇴였다. 게다가 재정 압박으로 진보교육감을 길들이려는 박근혜에 굴복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후퇴는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등 진보교육감들의 교육 개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부 진보교육감들은 정부의 재정 적자 책임을 현장에 고스란히 전가하는 통로 구실을 했다. 이재정 경기 교육감이 재정난 극복을 위해 우선적으로 선택한 것은 기간제 교사와 혁신 실무사 등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교육감이 어찌 이럴 수 있냐’고 분노를 터트렸다. 진보교육감들이 ‘현실’의 압력을 수용해 한 발 두 발 후퇴하면, 사람들이 진보교육감이 왜 필요한지를 묻는 순간이 올 수 있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가 ‘지방교육재정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재정 삭감을 본격화하고 있는 지금 진보교육감들의 후퇴는 교육재정 문제를 악화시키고 교육 개혁을 후퇴시킬 것이다. 그에 따른 고통은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따라서 진보교육감들은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대폭 늘리고, ‘누리과정, 돌봄예산, 고교무상교육,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관련 예산을 중앙 정부 예산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전교조는 박근혜의 교육재정 삭감과 진보교육감 공격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진보교육감이 동요하고 후퇴할 때는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벌떡교사들 2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