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쟁점과 향후 과제

이 글은 필자인 정원석(노동자연대 교사모임회원, 전교조 경기지부 조합원) 교사가 10월 27일~28일에 열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동의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 집담회’에서 발표한 글이다. 현재 전교조 활동가들이 직면한 가장 뜨겁고 예민한 주제 중 하나가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문제다. <벌떡교사들> 독자들이 이 주제와 관련해 토론하고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해 이 글을 싣는다.


 

전교조 지도부(중집)의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 전환 반대는 노동운동 진영에 큰 실망을 안겨줬다. 기간제 교사와 강사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아차 지부의 노조 분리 사태 이후 전교 조마저!라는 탄식이 들려 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도 전교조 내 좌파적 의견그룹인 교찾사가 배출한 집행부 하에서. 과연 전교조 조합원들이 보수화됐나? 많은 물음들이 던져지고 있다.

전교조 지도부는 왜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 반대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중집의 입장을 철회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었는지, 지난 수개월간의 논쟁과 활동을 돌아보고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를 위한 전교조 내 좌파들의 활동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문재인 정부의 ‘노동 개혁’ 특징과 문제점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며 노동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올렸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조건은 뒤로 미루고 고용 보장에만 국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뿐 아니라 저임금과 차별에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 고용 안정도 실상은 무기계약직화나 자회사로의 고용을 의미했다. 결정적으로 교육부 전환심의위의 발표는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실체가 ‘정규직화 제로’라는 점을 드러냈다.

이것은 정부가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비용부담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7월 20일에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정규직의 연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곧, 기업주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 “양보”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애초부터 비정규직 교·강사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다. “타법령에서 기간을 규정하는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경우”라며 예외로 취급했다. 그래 놓고는 노동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교육부는 이 노동자들을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논의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교·강사는 심의위 참가에서 배제됐고 한 달여 동안의 심의 결과는 이 노동자들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었다.

이것은 문재인 판 ‘노동 개혁’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박근혜처럼 강압적으로 노동계급의 희생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취하지는 않지만, 요란한 포장에 비해 실속은 형편없다.

게다가 정부의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는 방식을 취한 것도 문제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사용자인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고 하면 될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짜 의지가 있었다면 해당 부처의 전환심의위가 왜 필요하겠는가?(최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도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공약 파기 책임을 떠넘기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정책을 꺼내 놓음과 동시에 학교 노동자들의 갈등과 반목을 조장했다. 신규 임용티오를 대폭 줄인다고 예고해 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를 이간질했다. 교총은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반대 서명 운동까지 벌였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교육 부문에서 첫 작업을 시작했다. 교육 부문에서는 이미 지난해 교육공무직법안에 대한 논란이 크게 벌어졌고, 영어회화전문강사(영전강)의 무기계약직화(또는 정규직화)를 전교조는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데올로기에 민감한 교육 부문에서 먼저 시작해 다른 공공 부문의 선례를 삼고자 했던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 지도부(중앙집행위원회, 중집)는 문재인 정부 개혁의 본질을 폭로·비판하고 이간질에 맞서 학교 노동자들의 단결을 추구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교조 지도부는 그 반대로 나아갔다.

전교조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에 크게 기대를 걸었다. 좌파적인 활동가들도 신자유주의의 퇴조기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신자유주의 기조와 단절할 것이라고 예상하곤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지 6개월이 되도록 법외노조 철회, 성과급과 교원평가 폐지, 입시제도 개편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전교조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을 때조차 공개 비판을 삼갔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교·강사에게 ‘희망 고문’을 한 상황인데도 전교조 지도부가 오히려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이 정부에 기대 섞인 낙관을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의 비정규직 제로 대책은 너무 형편없거나, 심지어 어처구니없게도 비정규직의 해고로도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가령, 교육부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밝힌 “기간제 교원 감축과 정규교원 임용 확대” 방침은 기간제 교사의 대량 해고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정원 외 기간제 교사 자리에 (기간제 교사 계약을 중단하고) 정교사를 발령내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비정규직 교·강사들의 노동조건 개선 비용을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가 떠안지 않으려고 이들과의 계약을 기피할 수도 있다. 이미 교육청들은 재정 절감을 위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산정 기준 시간을 줄여 최저임금 상승 효과를 무력화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2 전교조 중집 결정 비판

전교조는 그동안 학비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왔고 기간제 교사의 차별 해소 에도 함께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자기 노동현장의 문제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유감스럽게도 8월 23일 전교조 중집은 영전강, 스포츠강사(스강), 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결정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중집 결정의 의미에 대해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전교조 중집은 영전강과 스강에 대해 제도 폐지만 얘기할 뿐 강사들의 고용 안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고용과 처우에 관해서는 정부와 당사자가 협의하여 결정한다”고만 했다. 비정규직 강사들의 고용 안정 문제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전교조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들의 경우에 대해서는 ‘선별적’ 고용 안정 보장을 요구했다. 즉, 일시적인 사유로 발생하는 휴직 대체 기간제 교사(정원 내)와 상시 지속적으로 일하는 기간제 교사(정원 외)를 나누고는 후자에 대해서만 고용 안정을 보장하라는 입장이었다.

현실에서 학교 현장에 광범하게 존재하는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함으로써, 같은 입장문에서 밝힌 “학교 안의 모든 노동자는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중집은 일부 기간제 교사들(정원 외)의 고용 안정을 요구하니(이때도 정규직 전환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완전한 반대 입장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강변으로 들린다. 휴직 대체 기간제 교사 비중이 정원 외 기간제 교사 비중보다 높은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기간제 교사들을 고용 안정 요구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게다가 중집은 무리하게 분리했지만, 기간제 교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휴직 대체와 정원 외 기간제 교사가 칼같이 분리되지 않는다. 휴직 대체의 경우에도 5년, 10년 이상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에 맞서 투쟁했던 전교조가 왜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문제에서는 보수적 태도를 취하게 됐을까?

 

노동조합 조직 보존주의

6월 30일 학비 노동자들의 파업을 앞두고 일부 전교조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강사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며 탈퇴했다. 7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두고 비정규직 강사들과 기간제 교사들이 고용 안정과 정규직화를 요구하자, 일부 조합원들의 보수적 반발이 더 심해졌다.

경제 위기, 교육재정 축소,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교사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에 더해, 임용고사를 보지 않고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직 교사로 전환하는 것이 교사들의 직업 안정성을 크게 해친다는 생각이 이런 보수적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임용준비생들(예비교사)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크게 반발한 것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런데 전교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보수적인 의식을 되돌리기 위해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이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공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8월 초 열린 전교조 전국일꾼연수는 온라인이나 언론 보도와는 달리 전교조 활동가들 사이에서 정규직화 지지 목소리가 많음을 보여 줬다. 그리고 현장에서 토론을 통해 반대 입장에서 찬성 입장으로 생각을 바꾸는 활동가들도 여럿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당일 개최된 중집은 정규직화에 관한 입장 결정을 차기 회의로 넘겼다. 그 사이에 지부·지회 단위 토론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탈퇴가 계속되고 초등위원회 등에서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등 압력이 커지자 중집은 대의원대회(대대)를 일주일 앞두고 서둘러 반대를 결정했다. 노동계급의 단결 원칙보다 노동조합 조직 보존(조합원 탈퇴 차단)을 선택한 것이다.

노조 상층 간부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의 원천인 노조 기구를 보존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흔히 보수적인 조합원들도 아울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보수적인 조합원들의 견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 자신들의 보수적이고 불필요한 타협을 조합원 탓으로 돌리는 군색한 변명일 때가 많다.

안타깝게도, 일부 투쟁적인 활동가들도 자신은 찬성이지만 조합원들 다수가 반대하니 어쩔 수 없다면서 ‘현장 정서’에 타협했다. 그러나 조합 내 대세를 좇는 추수주의의 사슬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중요한 투쟁 무기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노동계급 단결 원칙을 해당 부문에서 구현하는 조직이 되려고 노력해야지, 노동조합 기구 보존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일부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을 노동조합 내 단결을 해치는 사람으로 몰기도 했다.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것이 조합원 탈퇴 흐름을 막아 당장은 정규직 교사의 단결을 도모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계급의 단결을 옹호하지 못하면 결국 노동자들의 결속력과 투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정규직 교사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단결하지 못하면 성과급과 교원평가 폐지 등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맞서 싸우는 데도 불리해질 수 있다.

 

‘현실론’의 함정

전교조 중집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에는 “모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요구가 “과도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심지어 전기련의 “전원 정규직화” 요구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 원인인 양 탓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간제 교사들이 지지를 얻으려면 “현실적인 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마치 ‘전기련이 전원 정규직화 요구를 해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는 듯한 태도이자 자신들이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말이었다.

그러나 “현실적” 또는 “단계적” 접근은 운동의 요구를 쟁취하기는커녕 투쟁을 혼란과 분열과 사기 저하로 이끌 위험성이 있었다.

한 예로, 현대차 비정규직 운동에서도 정규직화 대상이 누가 될지를 따지면서(1차 협력

업체만이냐, 2차 협력업체까지냐, 3차 협력업체도 포함할 거냐) 그 내부에서 갈등을 겪었다. 이것이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운동의 약화에 한 일조를 했다.

만일 전교조 중집처럼 접근하면,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운동은 싸우기도 전에 사립과 공립 사이에, 정원 내와 정원 외 사이에 갈등을 빚을 것이다. 이렇게 운동이 분열하면 정규직화 요구 성취는 요원해지고, 운동 참가자들 사이에서 환멸과 냉소가 생겨날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을 잘 건사하는 것을 중시하는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당연한 요구가 기존 기구 질서를 뒤흔드는 “과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관점에 선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 더 큰 힘을 발휘해서 교육 현장의 적폐를 해결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교육의 특수성이라는 문제

비정규직 문제가 다른 부문, 다른 사업장에서 제기될 때와 달리, 자신의 부문, 자신의 사업장에서 제기되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다. 전교조 지도부도 비정규직 교사·강사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원칙”과 “현실”이 다르다며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의 주된 이유는 ‘임용고사의 형평성’과 ‘예비교사에 대한 역차별’이다. 임용고사를 통과하지 않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형평성에 맞지 않고,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교사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결국 교원임용시험 때문에 기간제 교사는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이 교육에만 특수한 상황일까?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도 많은 스펙을 쌓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개 채용 방식으로 채용된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도 마찬가지로 공개 채용 방식을 거치지 않으면 형평성에 어긋나고,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것이다.

이렇듯 정규직화에 따르는 ‘단순하지 않은 문제’는 어느 부문, 어느 사업장에서나 발생한다. 사용자들(기업과 정부)은 노동자들을 직종과 직무, 임금체계, 고용형태와 채용 방식 등등으로 분할해 관리한다. 사용자들은 개인 능력주의나 자유주의적 공정성 개념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제도화해 이런 분할을 정당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허위의식을 부채질한다. 전교조 중집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 방식과 직종 등으로 나눠 차등적으로 대하는 것도 이런 사고에 영향 받은 결과일 것이다.

분할과 이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제도의 형태가 부문과 사업장마다 특수할지라도 본질에서는 공통적으로 계급 착취와 지배의 문제다. 전교조 집행부가 마치 교사 부문에만 ‘복잡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교육의 특수성을 내세운 것은 노동계급(30년 전에 전교조 선배들은 교사도 노동자라고 외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으로서의 공통점이 결정적이라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노동의 관점에서는 정규직화를 지지해야겠지만, 교육의 관점으로 보면 그럴 수 없다고도 한다. 여기에는 임용고사를 교사 전문성 척도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임용고사는 전문성을 증명하는 시험이 아니라 예비교사들을 경쟁시켜 일부만 교원으로 선발하는 시험이다.

임용고사에 떨어지는 다수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선발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용고사 합격증 유무가 정규직화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간주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쟁 논리를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전교조의 좌파들은 교육과 노동을 분리시키고 전자를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교육운동 경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교찾사 내 일부가 교육과 노동을 분리하고 노동을 위해 교육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교육과 교육 노동자의 조건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일상적으로 고용 불안과 차별을 겪는 교사가 안정적으로 다른 교사들과 협력하거나 소신 있는 교육을 펼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진정으로 교육의 질을 개선하려면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를 통해 교사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고 협력과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3 유사한 사례들에서 교훈을 배우기

전교조 지도부의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 반대는 올해 3월 금속노조 지도부가 판매연대(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 노동조합)의 금속노조 가입 신청을 거부한 것, 4월 기아차지부 지도부가 비정규직분회를 내쫓은 것에 이어서 벌어진 일이다.

판매연대는 현대차·기아차·쌍용차·르노삼성 등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으로, 지난해 5월말 총회를 거쳐 금속노조에 가입을 신청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판매 직영점의 정규직 지도부와 일부 우파는 ‘판매연대가 들어오면 정규직 조합원의 생존권이 위험해진다’며 가입을 반대해 왔다. 사측이 1997년 IMF 위기 이후 비정규직으로 운영하는 판매 대리점을 대거 늘리고 노동자들 사이에 실적 경쟁을 강요해 왔는데, 엉뚱하게 그 책임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리며 보수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현대·기아차지부 지부장을 비롯해 금속노조 지도부도 이런 정규직 판매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다. 그러는 사이에 판매연대 노동자들은 지난해 노조 결성 이후 사측의 탄압에 시달려 고립돼 조합원 수가 줄어드는 등 고통을 겪었다.

그동안 정규직 노조들은 사측의 성과퇴출제 도입에 맞서 대리점 제도 폐지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노조가 대리점 제도 폐지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내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리점 제도의 폐지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도 함께 요구하며 투쟁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정규직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기아차 노조 분리 총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의 배경에는 김성락 집행부의 신규채용 합의가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웠다. 그러나 김성락 집행부는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일부만 선별적으로 신입사원으로 뽑는 ‘신규 채용’ 방식을 사측에 합의해 줬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랜 바람을 외면한데다가 사측의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합의를 거부하며 독자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관료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두 가지 사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원칙을 훼손한 점, 노조 지도부가 단결과 투쟁에서 대안을 찾지 않아서 문제를 야기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전교조의 사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러한 노동계급 내 단결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건설 노조에서도 내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방어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배척하는 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하철노조에서는 특히 전교조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지하철에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져 왔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노조 집행부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승진 등에서 차별을 두는 방안을 내놓았다. 조합 내 보수적 조합원들의 압력을 크게 받은 듯하다. 일부 조합원들은 ‘무분별한 정규직화에 반대’한다며 집단으로 노조를 탈퇴하겠다고 집행부를 압박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정규직에 대한 역차별’이라거나 정규직과 동일한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운동의 좌파들은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상적 원칙으로 취급하고 부문의 문제를 협소한 부문적 ‘상식’으로 대응하려 해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 단결의 원칙을 모든 부문에 일관되고 확고하게 적용할 수 있는 계급 정치가 필요하다.

 

4 전교조의 좌파들

전교조 내 좌파 의견그룹인 교찾사가 배출한 집행부 하에서 보수적인 결정이 이뤄졌다.

게다가 교찾사는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 논란에서 단일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2013년 규약시정명령 거부/수용 논쟁 때도 그 간단 명료한 문제에서 교찾사는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 박근혜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 것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 가서야 거부 입장을 정한 바 있다.

전교조의 대표적인 좌파 의견그룹(이었던)교찾사가 온건화 압력을 크게 받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특히, 자신들이 노조 집행부를 배출하면서 그런 압력이 더 커진 것 같다. 위 두 사례 모두 노동조합이 그 내부에서 심각한 분열이 있었고, 이때 노조 집행부는 원칙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노동조합의 단결을 우선하면서 후위 의식을 수용했는데, 이것이 교찾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여기에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것도 현장 투쟁보다 협상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에 치중하게 한 요인이 된 듯하다.

이렇듯 교찾사가 온건화 압력을 크게 받자 전교조 내 비정규직 교·강사 지지 흐름은 교찾사 밖에서 형성됐다.

특히, 전교조 중집의 8월 20일 결정 뒤 좌파들은 대대에서 정규직 전환 지지 입장을 채택하도록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집 결정을 뒤바꾸지는 못했다. 31명의 대의원들이 발의한 “전교조가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동의하고 그들의 투쟁에 연대하자”는 안건이 재석 247명 중 71명(30퍼센트)이 찬성해 부결된 것이다.

전교조 중집 결정이 준 충격 때문에 전교조 대대는 노동운동 안에서(그리고 비정규직 운동에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대대 결과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도부가 보수적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30퍼센트의 대의원들이 그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지지했다는 것은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지도부가 찬성 입장이었다면, 더 많은 대의원들이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를 지지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교조의 좌파는 중집의 입장을 거슬러 원칙 있게 대응했지만, 이들이 좀 더 일찍 이 문제에 대처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지지 입장과 활동들이 미리 조직됐더라면, 일찌감치 기층에서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 보니 좌파의 개입은 대대에서 바람직한 전교조의 입장을 채택하는 활동에 그쳤다.

거슬러 올라가면, 6.30 파업 때 전교조 본부가 비정규 강사 정규직화 반대 입장으로 문자를 공지했을 때부터 본격 대응했어야 했다.

그러나 좌파의 많은 부분이 영전강의 정규직화 지지를 분명히 하지 못했다. 2012년 영전강 논쟁이 불거졌을 때부터 지속돼 온 약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계획을 밝히면서 비정규직 교·강사 쟁점이 불거졌을 때 전교조의 많은 좌파들이 내부 이견 때문에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됐다. ‘모두가 당여히 반대하는데 다만 어떻게 싸울까 하는 점이 주로 쟁점이었던 박근혜 정부’ 때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는 좌파로 하여금 정치의 중요성(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설득하는 활동을 포함한)을 절실하게 제기하는 대목이다.

 

5 향후 과제 제안

기아차노조 분리 총회와 전교조 중집의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반대 결정을 목도한 뒤, 노동운동 안에서는 ‘정규직 노조는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비정규직이 주체’라는 주장을 흔히 접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단결하기가 어렵다고도 한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요한 투쟁의 주체이고, 투쟁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는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둘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식의 주장은 진실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이런 상호작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조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을 더 불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때 정규직 노조는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없다거나,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를 놓고 투쟁하는 것은 문제라는 식으로 해서는 이런 일이 효과적으로 벌어질 수 없다.

좌파는 이런 정치적 치우침을 피하면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현장에서부터 구축해 나가야 한다. 물론 전교조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서명과 선언을 통해 그런 기회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하거나 전부일 수는 없다.

좌파는 일상적으로 현장에서 비정규직 교·강사들과 접촉하고 대화하고, 그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차별에 항의하고 그들과 함께 싸우며 차곡차곡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쌓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 더 많은 전교조 현장 조합원들이 연계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또, 이런 활동들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시키려고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그런 활동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지지 운동을 전교조 안에서 벌여 나가는 (느슨한) 네트워크가 있다면 이런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지하철 정규직 활동가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지지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서울교통공사 노동자 공동행동’을 구성했다고 한다. 전교조에서도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구축하자.


벌떡교사들 4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