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퇴진할 때까지 퇴진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새누리당은 지지율 폭락과 함께 두 개로 쪼개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폭로 이후 두 달여 만에 연인원 1천만 명이 참가한 항의 시위의 결과였다. 여전히 거리 운동의 핵심 구호는 “박근혜 즉각 퇴진”이다.

박근혜는 정치적 코너에 몰려 있다. 그러나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근혜는 뻔뻔하게도 신년 기자 간담회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 전반을 부인했고, 헌법재판소 심리에서 박근혜 측 대리인단은 “촛불 민심은 국민 민심이 아니다”고 억지를 부렸다.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등 핵심 실세들도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이끌고 있는 황교안은 박근혜의 적폐를 밀고 가고 있다. 황교안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연속성 있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사드 배치,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비롯한 친제국주의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 등 민영화 추진 법안 통과를 압박하는가 하면,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게 떠넘기고자 성과연봉제를 비롯한 노동 개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또, 1월 4일 검찰은 ‘노동자의 책’ 대표이자 철도노조 조합원인 이진영 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얼마 전까지 파업한 철도노조와 좌파 진영을 염두에 둔 공격이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 운동은 여전히 계속돼야 한다.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됐다고 끝이 아니다. 여전히 황교안 내각이 그 뒤를 버티며 박근혜의 악행을 지속할 수 있으므로, 박근혜 정권이 퇴진할 때까지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위기 요인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촉매제가 됐지만,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누적된 불만이 마침내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폭발했다. 박근혜는 출발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부정하게 당선됐다. 최근 황교안이 ‘국가사이버안보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정원 권한을 늘려 공작정치를 부분적으로 합법화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극우 부패 인사들의 연이은 구설수와 낙마 때문에 출범부터 내각 구성이 삐거덕거렸고, 이후에도 내정된 인사들은 온갖 의혹과 추문을 불러일으켰다. 뇌물 수수, 횡령, 직무상의 부당취득, 권력오용·남용, 정실 인사, 불법, 부정직 등 각종 부패가 고질병 수준인 집단들이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을 이루고 있어서 박근혜 정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미르-K재단 등 권력형 비리와 함께 최순실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사태 폭로는 예견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아킬레스건이었다.

자본주의 하에서 정경유착의 고리는 국가와 자본의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에서 비롯한다. 국가는 자본 축적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국가는 법과 제도들을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고, 노동력 관리나 저항을 관리하는 차원 등에서 노동계급을 관리·통제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배계급이 일치단결해 탄생시킨 강성 우파 정권이었다. 지배계급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고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수호해 줄 것을 박근혜 정부에 기대했던 것이다. 재벌들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이유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재벌이 그저 돈을 뜯긴 피해자가 아니라 그들과 공범인 까닭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2008년 이후 한국 경제는 회복되기는커녕 계속 악화해 왔다. 12월 29일 정부가 ‘2017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2017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낮췄다. 정부가 다음 해 경제성장률을 2퍼센트대로 예측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의 수출은 2015년 8퍼센트, 2016년에는 6.1퍼센트 감소했는데, 미국의 금리 인상과 보호무역 강화로 2017년 수출 전망도 밝지 않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정책, 한국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과 자국 산업 보호 정책으로 대중 수출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기업들은 생산을 해도 판매가 쉽지 않자 공장 가동률은 7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설비투자도 크게 늘지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에 혹시나 걸었던 경제 살리기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겨졌다. 복지 공약은 빈껍데기가 됐고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이 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도 계속됐다.

또,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결정, 한일군사정보협정 등 노골적으로 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한 것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저항 운동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위기에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같은 정치 운동과 노동자 투쟁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강성 우파 정부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낙담하고 사기저하를 겪었다. 그러나 2013년 10월 전교조가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고 12월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깨지기 시작했다. 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 대한 항의 운동으로 발전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에 맞선 투쟁은 이충재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의 배신으로 패배했지만, 그뒤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투쟁이 이어졌다. 비록 정부와 사용자의 공격에 필적할 만큼의 저항 수위가 높지 못하고, 그해 11월 민중총궐기도 파업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이 박근혜 취임 첫해 겪은 사기저하에서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는 조직 노동자 운동의 자신감 수준을 가늠케 해 준 투쟁이었다.

마침내 2016년 4월 총선에서 정부 여당이 참패했다. 집권당의 총선 참패는 하반기 노동자 투쟁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2016년 9월 하순부터 철도 파업을 비롯한 공공부문 파업이 박근혜 퇴진 운동이 분출하기 앞서 전개됐다. 10월 29일에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첫 박근혜 퇴진 집회를 개최했다. 그래서 2008년 광우병 수입 반대 촛불 운동과 달리 조직 노동자 운동과 좌파가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선구적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시작부터 정권 퇴진을 내걸었다. 이 운동은 그만큼 처음부터 공격적이었다. 불평등한 현실, 나쁜 정책들의 문제를 정권의 문제로 일반화한 것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 과정에서 이화여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대학 구조조정을 저지했고, 한국지엠 창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전원 고용 승계를 따냈다. 국정 역사교과서도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단일 교과서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중의 의식이 급진화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조직 노동계급이 선구적 구실을 했음에도, 아직까지 노동계급이 자신의 고유한 힘을 충분히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철도 노동자들은 74일간 파업을 하면서 퇴진 운동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아쉽게도 성과연봉제를 저지하지 못한 채 파업을 종료했다. 일부 노동자들이 유리한 정세를 이용해 투쟁했지만, 아직 일반화된 계급투쟁으로 발전하고 있지는 못하다. 전교조가 연가투쟁으로 함께 한 민주노총의 11월 30일 파업은 경제적 타격을 주는 파업이 되지 못했다. 주로 정치적 상징 효과를 냈다. 이 파업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된 12월 3일 시위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전교조는 11월 30일 파업에 연가 투쟁으로 동참했다. 연가 투쟁 결정은 올바랐다. 그러나 ‘민중항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굳이 민주노총이 별도로 총파업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연가 투쟁이 전교조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 등의 생각이 적지 않으면서 아쉽게도 연가 투쟁 규모는 크지 않았다.

요컨대, 조직 노동자 운동과 좌파는 퇴진 운동의 밀알이 됐지만, 아직까지 정치적 헤게모니(주도권)를 쥐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퇴진 운동의 첫 정치적 수혜는 부르주아 야당(특히 민주당)이 입을 공산이 크다.

민주당 문제

민주당은 박근혜 퇴진을 놓고 퇴진 운동과 경쟁과 협력이라는 역설적 관계를 유지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퇴진 방식에서는 “즉각 퇴진”보다 “탄핵”을 선호했다. 사실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이 성장한 1980년대 이래로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부르주아 개혁주의 정당 민주당은 계급투쟁이 두려워 언제나 운동이 민중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제도권과 의회 안으로 수렴되도록 애썼다.

민주당은 박근혜 퇴진 대중 운동이 크게 일어난 11월 하순이 돼서야 겨우 탄핵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때조차 민주당은 두 길 보기를 하는 등 미덥지 못하게 처신했다. 또, 민주당을 비롯한 야3당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대행하고 있는 황교안에게 사퇴는커녕 여야정 협의체를 주문했다.

12월 19일 민주당이 “촛불 시민혁명 입법·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개악 문제 등은 빠져 있었다. 민주당이 촛불 운동을 “혁명”이라 부르지만 이 운동이 박근혜 퇴진뿐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 속 개혁을 추구하는 부르주아 정당이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났다. 민주당은 과거 집권했을 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외교적·군사적으로 도왔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향해서는 한 걸음도 못 내디뎠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공무원연금 개악에 동조했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 때때로 민주당의 기회주의를 비판하지만 동시에 야3당 공조를 중시한다. 그래서 민주당과는 달리 정의당은 거리의 퇴진 운동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국회 탄핵을 동시에 주장했다. 아쉽게도, 지금 황교안 내각 사퇴를 요구하지 않는다.

퇴진행동 내 온건파도 황교안 사퇴 요구를 내켜하지 않는다. 퇴진행동의 공식 요구는 황교안과 반민주·반노동·반민생·반평화 장관 사퇴인데도, 그들은 황교안 사퇴 요구를 회피하면서 운동의 수준을 야당의 수준으로 조율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근혜 개인을 탄핵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즉각 퇴진과 함께 그가 임명한 황교안 총리 내각의 총사퇴 등을 포함한 적폐 청산 요구를 제기하며 주류 야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전교조의 과제

박근혜는 전교조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전교조를 ‘해충’에 비유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 버렸다. 뉴라이트 경향의 교학사 교과서를 밀어붙이다 채택률 0%로 참패하자 이번에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화하고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다. 공무원연금을 삭감하고 교원평가제도를 악화시켰다.

박근혜 정부의 공격에 전교조는 지난 4년 동안 저항했다. 2013년 10월 전교조는 정부의 규약시정명령 강요를 거부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맞서 박근혜 퇴진을 선언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은 전교조가 박근혜에 맞서 투쟁한 것이 올바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교조는 여전히 계속되는 박근혜 퇴진 운동에 적극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의 교육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전교조 재합법화,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교원평가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며 투쟁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쟁들은 모두 매우 중요한 교원의 정치 활동이다. 교사들의 정당 가입 활동만이 교원의 정치 활동인 것은 아니다.(물론 교사들의 정당 가입 활동은 보장돼야 한다.) 물론 많은 조합원들이 그 운동에 참가하고 있을 것이다. 전교조 지도부는 이런 참가를 집단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진행중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탄핵심판 하더라도 사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박근혜를 대행하는 황교안 내각이 존속하는 한 박근혜 정권이 퇴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완전히 퇴진할 때까지 퇴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벌떡교사들” 43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