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 여전한 입시 경쟁 하에서 허울뿐인 학생 선택권

김현옥 전교조 조합원

교육부는 11월 24일 고교학점제 추진을 핵심 골자로 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발표했다. 고교학점제에 맞춰 개편될 것으로 전망되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도 2024년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2023년 부분 도입,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고교학점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학생의 진로·적성에 따른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고교학점제를 추진해 왔다. 학생과 학부모들도 고교학점제가 다양한 수업 선택권을 보장하고, 치열한 입시 경쟁의 부담을 줄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러나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사례들을 보면,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을 탐색하기보다는 수능 준비와 내신 점수 따기에 몰두하게 만들고, 교사들은 여러 교과 지도 부담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시행한 뒤에는 모든 과목에서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를 시행하겠다고 해 왔으나, 최근에 공통과목(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한국사)은 상대평가 방식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내신 부풀리기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제 도입을 공약했지만 임기 초에 이를 폐기해 버리기도 했다.

결국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더라도 일류 대학 진학을 위한 점수 따기 경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셈이다. 실제로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점수 따기에 유리한 수업에 몰려, 학생 30~40명이 한 수업을 듣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입시 경쟁과 턱없이 부족한 교사 수 문제 등으로 고교학점제 도입 취지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출처 교육부

 

정부는 고교학점제 시행 목표로 학생들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산업 수요에 맞춘 저렴한 노동력 공급을 노리고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사회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 세계와 고용구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기에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진로개척 역량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정부 발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진로를 탐색하는 진로연계학기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처럼 이른 시기에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조기 직업 교육을 통한 값싼 노동력 양산 과정과 좋은 대학 가기 위한 엘리트 과정으로 교육 과정이 양극화되도록 만들 것이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특정 직업군을 위한 권장 코스를 수십 가지 이상 구성해 정형화된 코스를 제공하며, 학생들은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기보다는 전문 상담사와의 면담을 통해 특정 코스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코스의 과목을 수강했는지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의 수준이 달라진다.

그동안 저임금 노동력을 교육하는 직업계고와 특목고·자사고 등의 특권학교로 차별이 벌어졌다면, 고교학점제 시행 뒤에는 일반고에서 교육 차별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교육 차별

한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교사들이 담당해야 하는 과목을 늘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2월 10일 발표한 ‘초·중등 교원 양성체제 발전방안’에서 ‘융합 전공’을 신설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교사들이 여러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맡게 되면 교사의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수업 전문성 약화와 교육의 질 하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0년에 발표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관련 쟁점’ 보고서는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전면 시행하려면 고교 교사가 추가로 최대 8만 8106명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는 교원 정원은 축소하면서, 선택 과목 확대에 따른 교사 부족 문제를 빌미로 기간제 교·강사 등 비정규직 교원을 늘리려 한다.

이미 중·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 비율은 18퍼센트 가까이 되는데,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기간제 교사 증가세는 줄지 않았다. 2016년 4만 6666명이던 기간제 교사 수는 2020년 4월 5만 7776명으로 4년 만에 1만 명 넘게 증가했다. 심지어 민주당은 교원자격증이 없는 ‘외부 전문가’도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입시 경쟁과 서열화된 대학 체계를 그대로 둔 채 고교학점제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흥미와 자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 충분한 정규 교원 충원으로 수업의 양과 질을 끌어올리라고 요구하며 학생과 교사들이 단결해 싸워야 한다.


  • 노동자연대 39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