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규모 학교 육성 기본계획안’,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통폐합을 중단하라

말만 반지르르할 뿐 실상은 농어촌과 구 도심 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악화시킬 ‘적정 규모 학교육성 강화’ 정책을 지역 교육청들이 야금야금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교육청에 내려보낸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권고 기준’은 2014년부터 나온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정책에 포함돼 있던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면·도서·벽지 지역의 경우 학생 수 60명 이하 학교 △읍 지역은 120명 이하 초등학교와 180명 이하 중·고등학교 △도시 지역은 240명 이하 초등학교와 300명 이하 중고등학교를 통폐합 대상으로 삼았다.

얼마 전 경기도교육청은 ‘2016~2020학년도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기본계획안’을 통해 경기도 내 84개 학교를 통폐합하거나 1교 2캠퍼스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교육청들보다 앞선 발표이다.

게다가 정부의 통폐합 기준인 300명 이하보다 2배 남짓 되는 의정부여중(534명, 혁신학교) 등도 통폐합 우선 추진 대상으로 꼽았다. 통폐합 대상 84개 학교 중 18곳이 정부 기준보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다. 교육부는 권고 기준보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를 통폐합하는 교육청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경기도교육청이 이를 노린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84곳을 모두 통합하면 4천억 원 정도의 인센티브가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경기도교육청 내 적정 규모 학교 육성 강화를 위한 전담 조직까지 신설했다. 한마디로 경기도교육청은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일 생각도, 소규모 학교를 혁신하여 농어촌의 교육 여건을 개선할 생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예산 확보를 위해 소규모 학교 죽이기 사업을 급선무로 여기고 있다.

 

효율성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은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을 추진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교육재정의 효율성 도모. 즉, 소규모 학교에 투입되는 1인 당 교육비가 다른 학교보다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소규모 학교의 정상적 교육 활동 여건 조성. 즉, 순회교사와 교사의 업무 과중,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하기에 매우 적은 학생 수 등 소규모 학교의 ‘비정상적’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보다 교육재정의 효율성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다. 열악하고, 소외된 지역의 학생들을 더 지원해 교육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경기도 작은 학교 지원에 관한 조례’에는 경기도 내 60명 이하 공립학교에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신도심지가 개발되고 지역의 불균등한 발전으로 학생 수가 줄어 교육 활동이 어렵다면, 적절한 교육적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지 ‘효율성’을 내세워 폐교 처리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방식이다.

경기도교육청의 행태는 2013년 미국 시카고에서 자행된 빈민가 공립학교 폐쇄를 떠올리게 한다. 시카고 당국은 주로 소외된 빈민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들의 성적이 좋지 않자, 질 좋은 교육을 위해서라며 공립학교 10%를 폐쇄했다. 그리고 자율형 공립학교인 차터스쿨을 증설했다. ‘교육적 효과’가 나오는 학교에만 집중 투자하는 정책이었다. 빈민가 아이들은 학교를 잃고 더욱 위험한 환경에 처하거나, 교육의 계급 격차를 실감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 수를 늘려라

이렇듯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정책은 반교육적이다. 그리고 저출산이 이 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이유도 아니다.

세계경제 위기가 여전하고, 특히 한국 경제는 더 안 좋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부채를 줄이고자 기를 쓴다. 교육 긴축도 그 때문이다. 시도교육청에 떠넘긴 누리과정 예산과 돌봄 사업이 그 사례다.

‘적정 규모 학교’란 이름으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경기도교육청의 계획대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나 1교 2캠퍼스 등이 추진되면, 해당 지역에는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첫째, 소외받는 지역의 학생들은 교육 여건 악화뿐 아니라, 장거리 통학 등 조건의 격차로 학생들의 생활 자체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둘째, 교원 증원이 대폭 축소될 것이다. 지난해에 떠들썩했던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계획에서 정부는 학교와 교사 구조조정을 기획했다. 교육재정 교부금 배분 기준에서 학생 수 비중을 확대하는 반면, 학교 수 비중은 줄여 학교 통폐합을 가속화하려 했다.

교육부 기준으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게 되면 학교 수가 현재의 반 토막이 될 전남, 전북, 경남, 경북, 강원 등 농산어촌 지역 교사 수는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학교 통폐합을 빌미로 신규 교사 증원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경기도교육청이 두 해 전 실시했던 기간제 교사 대량 해고 같은 비정규직 교사 구조조정이 벌어질 수 있다.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중이 꽤 높다는 점(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학교도 있다)을 감안하면,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1982년부터 30여 년 넘게 추진되고 있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의해 전국 농산어촌 5천여 개 학교가 사라졌다. 이제 그나마 남아 있던 학교까지 사라지면 그 지역의 아이들은 교육 받을 기회를 잃어 버릴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주창하는 경기도교육청이 마을에서 학교를 폐쇄해 버리면 농산어촌과 구도심지의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될 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정부의 교육 긴축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아주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박근혜가 대선에서 “신규 교사 채용을 확대하여 2017년까지 학급 당 학생 수를 OECD 상위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 공약에 따르면 2017년에 초등학교 23명, 중고등학교는 25명, 2020년에는 초등학교 21명, 중고등학교 25명으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적정 규모 학교 육성’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한국은 교육에서 정부 부담 비율은 낮고 민간부담 비율이 높다. 초·중등·대학 전체 교육비 지출에서 민간 부담 비율은 2.8퍼센트로 OECD 국가 평균(0.9퍼센트)보다 3배 이상 높다. 반면, 정부 부담 비율은 4.8퍼센트로 OECD 평균(5.4퍼센트)보다 낮다. 공교육비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정책에서 손을 떼야 한다. 많은 진보적 유권자들이 이재정 교육감이 그러라고 투표한 게 아니다.


벌떡교사들 41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