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교육 공약에는 박근혜 교육 적폐 청산이 없다

박근혜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악을 밀어붙이기 위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탄압했다. 또, 교사 간 경쟁과 갈등을 심화시켜 교육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성과급 등 교원평가제도를 악화시켰다. 나아가 교육복지 재정을 긴축하며 경제 위기의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겼고, 이는 학교 비정규직 대량 해고와 학교 현장의 예산을 실질적으로 삭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정책을 통해 농어촌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 했다. 또, 노동계급 자녀들의 교육 기회를 축소하는 개악들도 있었다. 특권학교, 대학 구조조정 등.

그렇다면 야당 대선 주자들, 특히 문재인은 박근혜 식 교육 개악에 대해 뭐라 말하는지 보자.

그는 얼마전 “정부가 해직자의 공무원·교직원 노조 가입을 금지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라며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 합법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문재인은 교원노조법 개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20대 국회에서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있지만, 이것은 민주당의 당론이 아니다. 사실 교사들의 노동3권을 제약하는 교원노조법을 만든 장본인이 민주당임을 고려한다면,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 없이는 자동으로 법 개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문재인을 포함해)은 교원노조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얼마 전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출범식에서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에 부분적으로 압력을 받은 듯하다.(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일방 강행을 문제 삼았을 뿐, 성과주의 정책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인정한 바 없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교육판 노동개악인 교원평가제도(차등성과급 포함)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성과급을 차등없이 수당으로 전환한다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문재인은 교원평가제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은 교원승진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말조차 없다.

교사 노동조건에 대한 공약도 2012년 공약과 차이가 크다. 2012년에는 모든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고, 영양교사, 보건교사, 사서교사, 특수교육담당교사를 충원하겠다고 했다. 또, 학급당 학생 수는 OECD 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려 초등학교는 학급 당 20명 수준, 중등교육기관은 학급 당 25명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교육공무직 신설 등도 약속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안희정조차 언급한 특수교사 확충도 공약에서 빠져 있다.

문재인은 2012년과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서 81만 개 일자리를 늘리고, 그중 특히 교육·복지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이 안에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포함돼 있다고 눙치듯 말한다. 민주당의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문재인은 박근혜 정권의 핵심 교육재정 긴축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당이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집권당과 야합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은 고등학교 의무교육화 등 일부 교육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를 위해 국가 부담 공교육비 비중을 OECD 평균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후보였을 때 강조했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은 사라졌다. 특히 국공립 유치원 확충 등 유아교육과 보육 시설의 열악한 환경 개선 정책은 없고, 누리과정 예산만 언급하고 있다. 공교육비 국가부담률을 끌어올릴 재원 마련 방안도 없다.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인한 기업주들의 수익성 악화 압력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대학입시

문재인 후보가 가장 후퇴한 공약 중 하나가 대학입시 경쟁교육 개선안이다.

수시 비중을 줄인다거나 논술전형 실기위주 전형을 폐지함으로써 수능 중심의 정시 비율을 확대하는 것이 문재인의 입시 정책의 골자다. 이 안은 입시 경쟁을 줄이기 위해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및 자격고사를 논의하고 있는 안보다 못한 것이다.

“15시간씩 학교와 학원에서 5지 선다 객관식 상대평가 입시 문제 풀이 학습 중노동의 노예 상태로 살아가는 학생들을 자유인으로 만들기는커녕, 그로 인해 손해를 볼 힘센 누구가들의 표를 의식해서 모든 자유의 선언을 집권 이후로 미루어 버렸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또, 문재인은 국공립대학의 공동입학, 공동학위제 방안(≪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밝혔던)에서도 후퇴해 단순히 재정 지원을 통해 지역 국립대를 육성하겠다는 방안 정도만 남았다. 대학 서열화 및 입시 경쟁 교육체제는 계급적 물질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지역 국립대 육성 및 사립대 재정 지원 정도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진짜 반값 등록금”, “대학등록금 상한제” 등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던 문재인이 이번에는 아예 대학등록금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세론’을 믿고 차기 정권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를 낮추려는 것 아닌가라는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이다.

한편, 이명박근혜 정권 10년간 추진된 대학구조조정 때문에 대학 서열화가 더욱 심화됐다.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전국의 대학을 5개 등급으로 나눠 예산을 지원하고, 여기서 하위 등급으로 밀려난 지방대와 인문사회 등 기초 학문 학과가 구조조정되면서 대학의 자유로운 학문 탐구 학풍은 사라지고, 실용학과 중심으로 협소화돼 갔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런 대학 구조조정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안철수는 어떤가?

국민의당의 안철수는 학제개편으로 교육을 산업의 필요에 맞추는 방향이다. 학부모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유치원 2년을 의무교육으로 받은 후, 빨리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초등학교에 지금보다 1년 당겨 입학하게 한다. 또한 고등학교를 진로탐색형 학교나 직업학교로 바꾸는 이유도 중등 교육을 받은 이후 대학 진학 보다는 사회 진출을 보다 일반적으로 하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안철수는 대학 입시를 위해 맞춰진 중등교육을 바꾸겠다는 혁신적 방안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결국 고등학교를 취업기관화 하는 방향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률을 낮추고 고졸 취업을 늘려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겠다던 박근혜식교육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2-5-5-2-4 학제개편은 한국 자본주의 체제가 처한 어려움을 여전히 친기업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나온 방안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인사 중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을 줄이려는 정부의 시도는 노동계급이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고, 계급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봐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도 말했듯 이러한 직업학교는 “학생들의 운명과 장래 활동이 미리 결정”돼 “사회적 차별을 영속시킨다.

또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최적화된 교육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주장한다. 각계각층 교육전문가, 정치집단, 행정관료가 참여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10년 단위로 장기적 교육정책을 세우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여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적절한 교육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혁신과 신산업 육성을 통해서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 오늘날의 장기불황을 돌파할 계기로 삼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경제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낙관론은 예측이라기보다 기대에 가깝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뿐 아니라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오늘날 자본주의가 만성적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가교육위원회를 말해야겠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전교조를 위시한 진보 교육운동 진영이 중시하는 개혁안이다.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가 강력하게 교육을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국가는 교사, 학교 비정규직노동자, 교육 공무원, 학생 들을 옥죄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중립적인 초당파적 교육 기구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꽤 크다.

이런 정서를 의식해 문재인을 제외한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등은 교육부 축소 또는 무용론을 펼치며 대안으로서 국가로부터 독립적이고, 정치적 중립성을 띠는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고 공약했다.

문재인도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기념회에서 독립적 국가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하고, 교육부 기능을 축소하여 초중등교육업무를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고, 대학 관련 업무는 교육부가 맡는 것으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22일에 발표한 교육 공약에서는 여기에서 뒤로 물러섰다.

국가교육위원회를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설치하고, 대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서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립적 기구가 아니라 대통령 자문기구로 위상을 축소시킨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교육의 중립성 논리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육 정책이 철저하게 계급 사회 유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모델로 흔히 거론되는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인권 친화적 기구라고 보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 시절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료들의 반발로 출발부터 누더기가 돼 독립적 수사권이나 조사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우파 정권 9년 동안에는 정권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차기 정권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므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되거나 심지어전에 양보한 개혁을 회수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공격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후보 시절 공약이 무엇이냐가 교육 개혁을 결정짓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개혁을 염원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개혁의 수준과 폭을 결정할 것이다.


벌떡교사들 4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