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약 개정 거부에 투표하자 : 지도부는 ‘거부 결정 시 즉각 총력파업 돌입’을 지금 결정해야 한다

지난 9월 28일, 제66차 전교조 대의원대회는 “[본부의] 총력투쟁 기조 아래 [해고자의 조합 가입·활동에 관한] 노동부의 요구 사항 수용 여부를 총투표에 부의한다”고 결정했다.

1999년 합법화된 이래 직면한 최대 위기 앞에서 대의원들이 느꼈을 정치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임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또한 지도부와 대의원들이 이 엄중한 싸움을 이끌겠다고 자임하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그 정치적 책임을 떠넘긴 총투표 결정에 아쉬움이 크다.

민변 소속 한 변호사는 ‘전교조가 정부의 규약 개정 요구를 위헌·위법이라고 비판하면서 규약 개정 여부를 총투표로 정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무엇보다,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의 불충분한 법리 설명에 근거해 규약 개정 문제를 조합원 2/3가 아니라 과반으로 결정하기로 한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6조에는 “규약의 제정·변경 … 에 관한 사항은 재적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하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강행 규정이다.

노동부도 이미 노동조합법을 내세워 3분의 2가 찬성해야만 규약 개정을 인정하겠다고 통보했다.

따라서 총투표 결과, 과반 이상 2/3 미만이 규약 개정안을 찬성했을 때 전교조는 정확히 규약을 개정하고도 노조설립신고를 반려당한 공무원노조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것은 대혼란과 동요와 사기저하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전교조가 혼란과 동요를 최소화하면서 저항의 진지를 단단하게 구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규약 개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9월 30일 중앙집행위원회(중집)의 호소문은 불충분하고 애매하다. 중집위원들은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 노동부의 시정명령과 규약 개정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해직을 각오하는 결사 투쟁”을 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지만, 조합원들에게 거부표를 던지라고 호소하지는 않았다.

즉, 중집은 규약 개정을 거부한다고 밝히면서도 책임 있는 자세는 취하지 않은 채 조합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 상황이다.

 

총력 파업
10월 23일 노동부의 결정 이후에 연가 투쟁 실행 여부를 정하겠다고 하는 등 집행부의 총력 투쟁안도 모호하다. 이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가능성을 높일 위험이 있다.

따라서 집행부는 총투표 결과 규약 개정 거부가 다수일 경우 즉각 총력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지금 결정해야 한다. 조합원들의 민주적 의지가 규약 개정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오면 정부는 법외노조를 통보할 것이고 이에 맞서 전교조는 강력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래야 전교조 탄압에 맞선 연대 행동도 일어날 수 있다.

총력 파업은 총투표에서 거부 결정이 나오고 10월 23일 노동부가 노조설립취소를 통보하기 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정부가 취소 통보를 한 뒤에 그것을 다시 철회시키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정부의 통보 전에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계획 없이 조합원들이 수동적이고 원자화된 상태에서 비밀 투표를 하게 되면 불확실한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고 그리 되면 패배할 위험성이 커질 것이다.

 

공개 토론회
한편, 총투표의 기조를 두고 지부·지회 활동가들 사이에 상이한 입장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조합원 의견 수렴을 위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투표”를 주장한다. 규약 개정과 거부 입장을 공평하게 설명하고 조합원들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총투표 과정이 민주적이려면 지회별로 공개 토론회를 열어 규약 개정 거부와 개정 입장을 가진 발표자들이 충분히 자기 주장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투표”라는 이름으로 주장의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비민주적이다.

게다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투표”를 강조하는 주장이 은근히 규약 개정론에 힘을 실어 줄 여지도 있어 불길하다.

지금 규약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고자를 상근자로 채용해 임금을 지급하고, 향후 교원노조법을 개정해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보장받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먼저 있고 노동조합이 있는 것이지 노동조합이 먼저 있고 노동자가 있는 게 아니다.

올해 공무원노조의 쓰디쓴 사례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공무원노조는 지난 7월에 해고자 인정 규약을 개정해 설립 신고를 했지만, 정부는 설립 신고서를 반려했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노조가 크게 흔들린 틈을 타 내년 공무원 실질임금 삭감안을 발표했다.

여기에 지금은 정부가 해고자 9명의 조합 가입·활동을 문제 삼고 있지만, 남은 해고자들에 대해서도 추가 공격할 수 있다. 교원노조법 개정 문제로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의 강성 우익적 통치 방식과 새누리당이 국회 내 다수파로 있는 현 상황에서는 기대 난망이다.

무엇보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면 많은 조합원들이 위축돼 조합의 결정에 따라 투쟁에 나서길 주저할 것이다. 이것은 전교조의 투쟁력을 약화시켜 교원평가, 성과급, 시간제 교사제 등 예상되는 정부의 공세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법외노조를 감수하면서까지 규약 개정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내 노조인데도 단체협상을 거부하는 정부가 규약 개정으로 조합원들의 투지가 한풀 꺾인 전교조를 겁낼 리 있겠는가.

더구나 민주노총 내 핵심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물러선다면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쳐 전체 노동자 운동 전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정부가 건설노조를 향해 규약 개정 압박의 칼날을 꺼내들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 다음은 화물연대가 소속돼 있는 공공운수노조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1999년 전교조의 합법화는 정리해고법·파견법과 맞바꾸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 이룬 것이었다. 이제 전교조가 전체 노동자 운동의 최전선에서 정부 공세에 맞서야 한다.

저지선
공무원노조가 제1 전선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한테 우롱당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전교조가 제2 전선에서 단호하게 대담하게 저지선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법외노조가 되는 것이 아무 문제없다는 뜻은 아니다. 1989년 때처럼 노조 가입이나활동 자체가 불법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체협약을 맺지 못할 것이고, 노조 사무실 임대료 지원이 끊길 것이며 무엇보다 조합원 수가 감소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교조가 굳건하게 원칙을 지킨다면 비록 일시적으로는 조합원 감소 등 어려움을 겪겠지만 운동이 전진하는 상황에서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전교조 결성 과정을 돌아보아도 1천5백여 명이 해직을 각오하고 끝까지 남아 투쟁한 덕분에 지금의 전교조를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전력을 다해 정부의 법외노조화공격을 막아내야겠지만, 설령 법외노조화로 내몰릴지라도 규약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은 단결력과 투쟁력이 강력할 때 노동자들의 조건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전교조가 실용주의적 대응을 한다면 정부는 한층 더 후퇴를 강요할 것이라는 점은 공무원노조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지도부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현 상황에서,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는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은 지역적으로 분산되지 말고 전국적으로 집중된 운동을 벌여 거부표를 최대한 조직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규약시정명령을 거부하는 조합원들이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상황을 공유하며 집중된 거부표 조직 활동을 하자.


*”벌떡교사들” 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