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투표는 무엇을 보여 줬는가

지난 10월 16∼18일 조합원 80.96%가 참여한 전교조 총투표에서 68.59%의 조합원이 규약시정과 해고자 배제를 거부했다. 압도 다수 조합원들이 법외노조화 위협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대의를 지키는 선택을 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준비하는 일련의 노동 탄압에 저지선을 구축한 것이다. 그래서 총투표 결과에 노동자 운동을 비롯해 진보진영 전체가 기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국민과 함께 하는 참교육을 선택한 전교조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총투표 결과는 우리 전교조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높여 줬다. 총투표 다음 날 개최 된 전국교사결의대회에는 예상을 훌쩍 넘어 1만여 명이 참가해 집회 장소를 가득 메웠다.

 

도박
총투표에서 압도적 거부 결과가 나오자 총투표 전술이 옳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총투표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일 총투표에서 수용표가 1/2∼2/3 사이에 나오고 그럼에도 정부가 노동조합법 16조를 들이밀며 법외노조를 통보했다면, 전교조는 생각하기도 끔찍한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거부표가 간신히 50퍼센트를 넘었어도, 전교조 일부에서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뛰쳐나가 합법 노조를 만들려고 시도했을 수도 있다(총투표 전에 열린 지회 총회들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이런 위험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9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총투표 전술을 반대한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을 믿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사후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오히려 ‘대의원들 다수는 시정명령을 반대하는데 조합원들이 법외노조 상태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총투표 실시의 배경이었다.

전교조는 이명박 정부 내내 탄압당했고, 그에 맞서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할 때가 적잖았다. 그 결과로 조합원들의 사기와 투쟁 자신감이 충만하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가 9월 23일 최후통첩을 보내자 이런 불안과 염려가 전교조 안팎에서 만만치 않게 생겨났다.

그래서 9월 28일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가 시정명령을 거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투쟁을 이끌겠다고 표방해야 했다. 그러면서 남은 한 달 동안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자신감을 고무하는 활동들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채 제출된 총투표는 지도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조합원들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여기에 총투표 막바지로 갈수록 조합원들 사이에서 거부/수용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대의원대회에서 총투표와 함께 결정한 총력투쟁은 변변하게 해보지도 못했다.

만일 대의원대회에서 거부 입장을 결정했다면, 정부가 설정한 기한인 10월 23일까지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자신감을 고무하며 연가 투쟁을 비롯해 총력 투쟁을 건설할 주체적 역량을 지금보다 더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톱니바퀴
한편, 9월 28일 대의원대회 후 중앙집행위원들은 시정명령을 거부하겠다고 결연하게 밝혔지만, 조합원들에게 거부표를 던지라고 호소하지는 않았다. 집행부는 총투표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민주적이라는 압력을 크게 받았다.

다행히도 집행부의 거부 입장 표명과 거부표 선동 자제 사이에 생겨난 간극을 현장의 활동가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전국의 많은 활동가들이 전력으로 거부표를 조직했다.

지난 2월 말부터 <벌떡교사들>을 비롯해 일단의 활동가들이 규약시정명령 거부를 주장해 왔다. 이 작은 톱니바퀴는 10월에 수백 활동가들이라는 중간 톱니바퀴와 맞물렸다. 그리고 마침내 조합원 69%에 달하는 큰 톱니바퀴에 동력이 전달됐다.

전교조 내부에서 강력한 거부 선동이 일어나고 10월 들어 복지 공약을 왕창 폐기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 증대까지 더해, 전교조 밖 운동 진영도 대부분 거부 입장을 응원했다. 총투표 직전에 많은 운동 단체들이 학교 앞 1인 시위를 했다.

이런 복합적 요인들이 조합원들의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지 않고 총투표 전술이 옳았다는 것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민주적 의지
조합원 69%가 시정명령을 거부한 지금,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민주적 의지를 단체 행동으로 조직해야 한다.

총투표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울지 말지를 묻는 과정이었다. 조합원 압도 다수가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모름지기 민주적인 지도부라면, 조합원 다수의 의지를 단체 투쟁으로 옮겨야 한다.

물론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두고 전교조는 내부에서 또 한 차례 진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 핵심에는 연가 투쟁 실시 여부가 있다.(노조 전임자 복귀 거부 여부도 또 다른 축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다.)

총투표 자체는 조합원 개인들의 의지가 표출 되는 과정이었지, 그 자체로 노동조합의 단체적 의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총투표 결과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이미 투표가 가장 강력한 투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개인들의 의지를 강조하는 견해다.

그러나 집행부가 총투표에서 나타난 다수의 의지를 단체 행동으로 조직해야 박근혜 정부의 탄압에 맞서 전교조가 단체로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벌떡교사들” 9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