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교사 파업 -영국 교사들이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주다

3월 26일 영국 교사들이 임금·연금·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하루 파업을 벌였다. 잉글랜드에서는 대다수의 학교가, 웨일스에서는 모든 학교가 문을 닫을 만큼 파업의 여파가 컸다. 런던 등 주요 도시에선 수천 명의 교사들이 가두 시위를 벌였고 많은 시민들이 행진에 동참했다.

이번 파업의 성공과 저항의 규모는 정부에 대한 교사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줬다. 정부의 비난과 이간질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질 높은 교육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사들의 정당한 파업을 지지했고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도 정부의 긴축에 맞서 싸우는 교사들을 응원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교사노조(National Union of Teachers; NUT) — 영국 최대 교사노조 — 는 임금 인상, 성과급 도입 철회, 연금 개선, 업무 경감을 핵심 요구로 내걸었다. NUT의 크리스틴 블로워 사무총장은 이런 문제로 “수천 명의 유능한 교사들이 조기 퇴직을 하고, 신규 교사 중 절반이 5년 내에 교직을 떠나고 있다”며 황폐화된 교육 현장을 교사 파업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지목했다.

긴축 공격

영국 교사 파업의 배경에는 정부의 긴축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정부는 연금 개악안을 내놨는데 골자는 ‘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것이었다. 교사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개악안이었다.

교사 기여금(보험료)을 6.4%에서 9.6%로 50% 인상하고 연금수령액 산정 기준을 퇴직 직전 소득에서 재직 평균 소득으로 변경하는 것인데, 이 안에 따르면 연금 가치가 3분의 1 정도 삭감된다.

여기에 현재 65세인 연금 개시 연령이 2020년에는 66세로, 이후에는 68세로 늦춰진다. 연금수령액 인상 기준도 소매물가지수에서 소비자물가지수로 변경해 기존 연금수령자도 타격을 입게 됐다.(영국에서는 주거 비용 등이 포함된 소매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인상률이 높다.) 그리 되면 연간 2만 파운드(약 3천5백만 원) 연금수령자의 경우 25년간 7만 5천 파운드(약 1억 3천만 원) 손실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로 2011년 6월 14일 NUT와 교사강사연합노조(Association of Teachers and Lecturers; ATL)가 25년 만에 사상 최대 규모 교사 총파업을 벌였다. 온건한 성향의 ATL이 노조 출범 127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할 만큼 교사들의 분노가 컸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공립학교 가운데 3분의 1이 문을 닫았고 3분의 1은 단축 수업을 해야 했다. 이것은 그해 11월 2백만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참가한 대규모 연금 개악 반대 파업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NUT와 교원연합/여교사노조(National Association of Schoolmasters/Union of Women Teachers; NASUWT)가 연대해 지역 파업을 벌였다. 합쳐서 60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양대 노조의 파업에 정부는 움찔했고 교육부장관은 면담을 통해 교사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해결책을 찾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양대 노조 지도부가 11월로 예정된 전국 규모의 연대 파업을 미루면서 정부와의 대화를 기다렸지만 정부는 대화를 회피했다. 이에 NUT가 이번 3월에 전국적 파업을 조직한 것이다.

교사들이 파업에 나선 또 다른 이유는 교사의 임금이 하락한 반면 노동조건은 더는 견디기 힘든 수준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영국 교육부 통계조사에 따르면 2008년 이후 교사의 근무시간은 늘고 보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초등교사의 근무시간은 2008년 52시간에서 59.3시간으로, 중등교사는 50시간에서 55.6시간으로 늘었지만 보수는 2008년의 90% 수준으로 감소했다.

파업에 참가한 한 교사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 때문에 파업에 참가했습니다. 저도, 동료들도 모두 지쳤어요. 상시적인 감시와 감사로 인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겠어요. 저는 교직을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병을 얻게 될까 봐 걱정이에요.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합니다. 교사들이 학교를 떠날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교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할 겁니다. 만약 열정적인 교사들이 학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교육계 전체가 고통을 겪게 될 거예요.”

또 다른 교사도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으로 고통 받는 교사들에게 68살까지 일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하고 말했다.

영국 교육부는 4살짜리 아이들에게도 평가를 강요하며, 무리하게 수업일수와 수업시수를 확대하고, 점점 더 많은 학교들을 민영화하고, 교육 과정 통제를 강화하는 등 교육을 망가뜨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NASUWT가 교육부와의 협상 이후로 파업을 연기한 것은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이번의 성공적인 파업으로 교사들의 저항이 확산되고 자신감이 올랐다. NUT 교사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올 여름 더 큰 파업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업에 참가한 교사들은 하루 파업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저항의 수위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맨체스터의 한 교사는 “우리는 시카고 교사들한테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파업에 나섰고 이길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고 강조했다.

런던의 한 교사는 “이 정부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우리가 힘을 합해 긴축에 맞서 싸워야 해요. 이것은 단지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예요” 하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도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며 더 많은 교사들이 교육을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한국 교육 상황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한국의 교육 상황도 영국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악, 교원평가-성과급-근무평정 일원화, 시간제 교사제 도입 등 교사들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학교도 교사들에게 점점 더 견디기 힘든 곳이 돼 가고 있고, 정부는 교육 실패의 책임을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교사들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들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근무 여건 악화와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불안감
이 ‘탈교직 러시’를 부추기는 것이다.

교사의 문제는 곧 교육의 문제이다. 교사의 낮은 보수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결국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만약 교사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교사는 물론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교육을 망치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교직과 교육을 방어하기 위해 파업 투쟁을 벌이는 영국 교사들이 우리에게 갈 길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