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과 법외노조 시대, 전교조의 과제

박근혜 정권은 왜 전교조 공격에 안달을 내는가?

법외노조 통보 이후 전교조는 굴하지 않고 항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법외노조는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노동조합의 존재를 전면 부정한다는 점에서, 또한 민주주의의 후퇴이자 참교육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전교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막가파 식 공격은 “경제 위기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의 해결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다. 1) 공공부문 공격(민영화와 규제 완화) 2) 임금 체계 개편(통상임금 후퇴, 연공급에서 직무·능력·성과 중심 체제로, 임금피크제 확산 등) 3) 노동유연화 강화(파견업무의 범위와 기간 확대,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용, 시간제 일자
리 확대 등) 4) 노동조합 탄압(전공노 설립신고 반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등).

그래서 교육 민영화, 공무원연금 개악, 성과급제 강화(차등 확대와 일할지급), 시간제 교사제, 법외노조 등 일련의 교육 공격은 전교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문제이다.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에 반발해 노동자들의 저항이 성장하는 것을 막으려는 지배자들의 시도 중 하나가 교육을 통제하는 것이다. 국정 교과서 채택 시도에 보듯이,최근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려 한다. 또, 전교조 죽이기 프로젝트는 시간제 교사제, 교원평가·성과급·근평 일원화, 특권학교 확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교육 민영화, 공무원연금 개악 등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밀어 붙이는 데서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전교조 죽이기는 박근혜 뜻대로 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전교조 죽이기도, 신자유주의 교육 공격도 박근혜 정권의 의도대로 되고 있지는 않다. 박근혜가 막가파이긴 해도 막강하지는 않다는 증거 중 하나다. 태생적으로 부정과 부패로 출발한 정권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가 세월호 참사로 폭증했다. 지방선거에서 겨우 참패를 면했지만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난관에 봉착해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인사 참사로 정권의 불안정성은 한층 커졌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새누리당 지도부 선출 과정은 집권당 내 갈등과 분열의 조짐을 여실히 보여 줬다.

특히 13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한 것은 박근혜 정권과 우파들에게는 악몽 같을 것이다. 특권경쟁교육에 대한 반감과 교육 개혁에 대한 열망이 진보 교육감 대거 당선으로 표출된 것이다.

또한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과 1기 진보 교육감의 교육 정책이 폭넓게 인정받은 것이다. 그래서 극우 인사인 김명수 같은 자를 교육부 장관에 앉혀 대중의 교육 개혁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고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을 단속하고자 했던 것이다. 기분 좋게도, 이 하자 투성이 인사는 결국 대중의 불신을 거듭 사다 낙마했다.

한편 노동자 투쟁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KBS 노조는 파업을 통해 길환영 사장을 해임시켰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골리앗 삼성에 맞서 소중한 승리를 얻었다. 케이블·통신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의료, 철도 노동자들이 박근혜의 신자유주의 공격에 맞서고 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물론 이런 투쟁들이 양대 사회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충분히 고양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박근혜 당선 직후 노동자 운동 안에 만연해 있던 패배주의와 사기 저하에서는 벗어났음을 뜻한다.

전교조도 투쟁성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규약시정명령을 압도적으로 거부하고 8천 명이 교사대회에 참가했다. 지난 6월에는 1천7백 명이 조퇴 투쟁을 했다. 또, 1만 2천여 명의 교사들이 박근혜 퇴진 선언에 참가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라는 탄압과 신자유주의적 교육 공격에 직면해 있지만, 박근혜 정권의 약점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전교조 운동 방향을 둘러싼 논쟁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은 전교조가 살기 위해서는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투쟁을 하면 [진보교육감 대거 당선으로 얻은] 소중한 교육 개혁의 기회를 망칠 수 있으니, 탄압을 하든 구박을 하든 교실의 학생만 보고 묵묵히 교육 개혁”에 힘쓰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전교조가 투쟁하면 교육 개혁이 실패하리라는 주장은 근시안적이다. 투쟁과 교육개혁, 투쟁과 참교육 실천을 대립시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단견이다. 참교육을 현실화 하는 힘은 투쟁에서 나오고 교육 개혁의 성과는 투쟁이 성장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참교육은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과 경쟁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 제도와 정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서 전교조는 “교육개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교육이 가능한 학교, 평화롭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참교육의 열정과 역량을 쏟는 것은 참교사의 책무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교육 개혁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지난 역사와 경험이 보여 주듯이, 투쟁 없이는 작은 개혁조차도 이루기 어렵다. 그리고 전교조가 투쟁을 자제한다면 박근혜 정권은 그 동안 전교조와 진보 세력이 피땀으로 이룬 교육 개혁의 성과들을 마음 놓고 허물어뜨릴 것이다.

한편,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인수위원인 이범 씨는 “법외노조로 내모는 황당한 상황 앞에서,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전교조의 투쟁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고 주장했다.

‘쟤들이 잘못했어요’라며 남 탓을 하는 투쟁이 아니라 ‘학교 개혁’과 ‘수업 개혁’으로 ‘우리부터 바꾸자’고 전교조가 솔선해야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사의 “윤리적 실천”이라고 말한다.

이범 씨가 윤리적 실천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던 촌지 거부 운동은 독재 정권에 맞서는 전교조의 사회·교육 민주화 운동의 일부이자 현장실천이었다. 그는 참교육이 학교 안 실천뿐만 아니라 학교 밖 투쟁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 교사의 진정한 윤리적 실천은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맞서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속에서 자라나는 연대와 협력 등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경기지부 지도부(이하 경기 지도부)도 논쟁에 불을 지폈다. 경기 지도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후속조치에 따른 전임자 복귀’ 보도자료를 냈다.

경기 지도부는 ‘현장 속에 살아 숨쉬는 전교조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 속으로 학부모 곁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나아가서 지금 “전교조가 가야 할 길”, “전교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 “한국교육을 실질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길”, “참된 승리의 길”은 투쟁이 아니라 “혁신학교와 학교혁신운동”이라고 주장했다.

혁신학교와 학교혁신운동은 당연히 필요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투쟁이 아니라 교육운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대립시키지 말아야 할 것을 대립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경기 지도부는 “전교조의 문제로 정권과 대립하며 아이들을 위한 열정을 소진하고 싶지 않다. … 투쟁을 하며 기력을 거리에서 쏟는다면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이 될 것”이라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목은 적잖은 조합원들에게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투쟁은 열정을 소진하는 부질
없는 짓이고, 전교조의 투쟁이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실 수업과 학교 교육의 변화는 교사 개개인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현신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정권의 교육 정책, 교사의 노동조건, 학교 교육 환경, 교육 재정과 복지, 민주주의 등 전반적인 교육 구조 속에서 결정된다. 교사 자체가 그런 교육 구조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투쟁이 (사실 이 점이 더 주되게) 참교육을 지키는 데서 필요한 활동이다.

그래서 경기 지도부가 전교조에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용단”을 요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지금은 “전략적 후퇴”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드러나는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 투쟁을 건설해야 할 때이다.

예컨대, 전교조는 하반기에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원노조법 개정 투쟁을 앞두고 있다.(물론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교원노조법은 폐기돼야 하는 악법이지만 말이다.) 이때 전교조 조합원들은 국회의원의 선의를 기대하며 기다려야 하는가?

그러나 1999년 전교조의 (불완전한) 합법화는 선배교사들의 지난한 투쟁과 함께 1996년 12월과 1997년 1월 민주노총 파업의 결과물이었다.

전교조의 운동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에게 어떤 노동조합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경기 지도부는 “현장 속에 살아 숨쉬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전교조”, “교사의 전문성을 보다 많이 발현하는 노동조합” 건설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임무가 혁신학교를 지도하고 지원하는 것에 한정될 수는 없다. 전교조는 참교육 실천에 더해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교사와 학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다른 노동자 부문에 연대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교육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고,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이 교육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교조는 투쟁성과 투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 시대, 전교조의 올바른 대응은 무엇인가?

전교조 운동 방향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는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의 관계 또는 진보 교육감 시대 전교조의 구실이라는 문제가 있다.

지독한 교육 현실에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은 진보 교육감이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공격에 제동을 걸고 교육을 실질적으로 바꿔 주기를 바란다. 실제로 진보 교육감들이 약속한 정책은 경쟁 교육과 입시 고통 완화, 교육 불평등 완화, 교육복지 확대, 혁신학교와 학교혁신, 교육청 관료 시스템 개선, 학교비정규직 차별 완화 등 제대로 실행된다면 교육에 변화를 가져올 것들이 많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과 우익은 어떻게든 진보 교육감들을 흠집 내려 하고, 말랑말랑하게 길들이려 한다.

물론 진보 교육감 당선만으로 교육 개혁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진보 교육감 1기가 보여 준 교훈이다.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진보 교육감에 무비판적으로 협력하려는 태도가 전교조 내에서 투쟁을 자제하도록 하는 경향을 낳았다. 그래서 종종 진보 교육감의 후퇴와 배신에 무기력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전북의 경우 교원평가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라는 전교조 지부의 강력한 항의와 농성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전국 최초로 자율서식이 도입됐다. 경기의 경우도 지부의 단식농성으로 교원평가 개선을 얻어냈다. 강원의 경우 학교 내부형 일제고사를 폐지한 성과를 거뒀는데, 진보 교육감이 타협적으로 될 때 지부가 단호한 점거농성으로 맞선 덕분이었다.

따라서 전교조의 투쟁이 교육 개혁을 좌초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 오히려 전교조의 투쟁이 없다면 교육 개혁의 성과도 후퇴할 수 있다.

사실, 교육 개혁을 위협하는 것은 정부와 우파의 공격이다. 그런 공격으로부터 진보 교육감을 방어해야 하지만, 결코 무비판적이어서는 안 된다. 진보 교육감이 동요하거나 후퇴할 때는 공개적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진보 교육감이 뭘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투쟁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도 피해야 한다.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어 놓은 정치적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교육 개혁을 위한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의 교육 정책은 교육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은 첨예한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자사고 폐지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진보 교육감들이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폐지 의사를 점점 밝히고 있는 반면, 이청연 인천 교육감은추가 지정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미 운영 중인 자사고는 취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석준 부산 교육감은 해운대고의 자사고 지정 기간 연장 신청을승인했다.

이렇듯 진보 교육감 시대는 열린 정치 공간을 전교조에게 제공해 주지만,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할 때만 그 정치 공간이 주는 기회를 움켜쥘 수 있다.


*벌떡교사들 1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